“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김명순 시 <유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2021,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파주: 한울, 313쪽 재인용.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평가받는 김명순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성적 조롱과 희롱의 대상이 된 뒤 극단적인 선택 직전 남긴, 놀랍도록 서늘한 시다. 그는 연인이던 이응준에게 강간당하고 다시 결혼마저 거절당했지만, 가까운 사이였던 김동인으로 인해 성폭력 피해를 입는 등 이중적이고 관음적인 식민지 근대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모욕당하고 조롱당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타락한 여성으로 규정돼 성적 조롱과 희롱이 대상이 됐다가 슬픔과 우울증 속에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김명순. 그가 느꼈고 감내해야 했던 슬픔과 우울, 분노는 어디까지였을까. 그 심연의 깊이를 알 수 없다.(2021.2.16)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