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 처벌 못한 학폭, ‘사회적 처벌’ 불렀다 [‘학폭 미투’ 파문]

방송인·체육인, 학폭 미투에 퇴출
“과도한 처사” 비판 속 “정당” 우세
법 집행 기관·교육당국 불신 표출
도덕적 비판에 기대, 폭로 쏟아져

끊이지 않는 폭로 왜
사태 발생하면 쉬쉬하기 급급
피해자 제대로 된 사과 못 받고
가해자도 용서받을 기회 빼앗겨
시간 지나 가해자만 행복한 삶
TV로 보며 피해자 상처 헤집어
가정·학교·사회적 책임 강화해야

“그들이 일궈낸 성과는 폭력과 갑질로 이뤄낸 것이다. 더 이상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청소년들에게 ‘학교폭력을 저지르면 이렇게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

최근 방송인이나 운동선수 등 유명인들이 과거 저지른 학교폭력으로 오디션 프로그램 하차나 경기 출전 정지 처분 등의 ‘사회적 처벌’을 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유명인의 경우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 ‘여론의 심판대’에 올라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지위를 잃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거 청소년 시절 저지른 잘못이 거대한 부메랑이 돼 되돌아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뒤늦은 맹비난은 ‘과도한 처사’라고 비판하지만, 이 같은 사회적 처벌은 ‘정당하다’는 의견이 많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적어도 ‘TV와 광고 등에 나오면서 인기와 부를 누리고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신호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학교폭력 근절 문화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처벌의 수준이 어디까지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일 경우는 더욱 복잡해진다.

 

◆ “가해자 꼭 단죄” 공감대… 처벌수위 놓고선 논란 ‘분분’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미투’가 연달아 터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많은 사람이 사회적 처벌에 기대고 있는 것은 한편으론 가해자 처벌이나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학교폭력 사건 처리 체계를 개선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에 이미 벌어진 사건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 바꾼다면 10년 뒤 나올 폭로는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처벌 못 하는 사회

 

“현 제도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사회적인 처벌이 공론화돼야 합니다.” 최근 배구선수 이다영·이재영 자매의 학교폭력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이번 사태를 본 많은 이들은 사회적 처벌이 ‘정의’라고 말한다. 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만큼, 가해자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선수가 지핀 학교폭력 논란은 체육계를 넘어 사회 전방위적으로 번지고 있다.

 

17일 블라인드나 네이트판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현직 교육감 자녀, 현직 경찰관, 항공사 직원 등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20여년 전 지속적으로 따돌림과 폭력을 당했다고 쓴 사람은 “가해자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피해를 본 사람은 평생 기억한다”며 “가해자가 평생 자숙하며 살길 바란다”고 적었다.

 

많은 사람이 이 같은 폭로를 지지하고 있지만, 개인정보를 공개해 가해자가 특정되는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피해자의 폭로가 공익 목적이라기보다 사적인 복수로 볼 가능성이 있다면 사실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이 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일반인의 경우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해서 그가 속한 기관·회사에서 징계 등의 처벌을 받는 것이 정당하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영미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판단력이 부족한 시기에 한 행동으로 성인이 된 뒤의 성과를 박탈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폭로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반론도 있다. 피해자들이 과거 사건에 대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도덕적 비판’이라는 사회적 처벌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학교폭력을 폭로하는 글에는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비난이 마땅하다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제대로 된 처벌·피해자 구제 체계 만들어야

 

오래전 발생한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는 것은 바꿔말하면 과거에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법 집행 기관과 교육당국 대응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학교폭력은 별도의 처벌 법률이 있지 않고, 정도가 심할 경우 일반 폭행·상해 등의 혐의가 적용된다. 경미한 징계의 경우 처음에는 생활기록부에도 기록하지 않게 돼 있는 등 가해자에게 유리한 체계라는 지적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폭력위원회 등을 거치지 않고 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학교폭력 해결업체’까지 등장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교폭력을 방지하고, 심리 상담 등 학폭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폭력 예방 지원단체인 푸른나무재단의 이선영 상담팀장은 “학교폭력 폭로를 지켜보며 가장 안타까운 것은 ‘10년 전 그때’ 해결했어야 했다는 것”이라며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사건을 축소하거나 쉬쉬하지 않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는 “학교폭력은 가정과 학교,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며 “실효성 떨어지는 상담 시스템을 개선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학생뿐 아니라 성인도 피해를 회복하도록 돕고, 가해학생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폭력을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지만 이번에 불거진 사례를 활용해 잠재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유나·이종민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