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주원료는 뭘까. 모두가 알다시피 농산물이다. 막걸리는 쌀을 중심으로 만들고, 맥주는 보리, 와인은 포도로 만든다. 소주 역시 쌀, 밀, 찹쌀 등으로 빚은 발효주를 증류해서 만든다. 즉 농업 없이는 술을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오래된 양조장 유적이라고 할지라도 농업이 탄생한 이후에 등장한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뒤집을 만한 발견이 하나 일어난다. 바로 농업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양조장이 있다는.
농업은 인류의 역사를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석기에는 수렵 및 채집이 주를 이뤘다. 신석기에서는 주요 활동이 농경으로 바뀌는데, 인류는 경작을 위해 보다 날카롭게 석기를 다듬었다. 저장해 놓은 곡물은 사유재산으로 바꾸었으며, 신분제의 확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인류는 재배하던 밀, 쌀, 보리, 포도 등으로 술을 빚었고, 그것을 통해 인류가 영위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문제는 이 기간이 아직 본격적으로 농경문화로 넘어오지 않았다는 것. 농업의 시작은 대략 기원전 1만년 전부터 9000년 정도로 본다. 즉 1만3700년 전은 아직 수렵, 채집이 중심인 구석기. 이 점을 감안하면 라케페트 동굴 유적은 자연 상태 곡물을 채집, 저장해 술을 빚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업이 시작되기 전 수렵 외에 인류가 가졌던 두 가지 영역이 있다. 바로 종교와 예술이다. 이미 인류는 농업 이전에 신을 모시는 신전을 만들었으며,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적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술까지 빚을 능력이 있었고, 이러한 술은 장례의식이나 축제 등 중요한 의례, 또 신과 만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였다고 추정된다. 술은 신의 존재와 인류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농업 이전부터 했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에 게재된 연구논문에서는 아예 ‘농업이 시작된 이유는 술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인류는 먹고살기 위해 농업을 시작한 것이 아닌, 술을 마시기 위해 농사를 지었다는 것. 만약 사실이라면 어쩌면 이때가 더 낭만적이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사회학과 졸업.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 주임교수,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 학과 겸임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