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이상훈)는 배재학당(배재고 학교법인)과 일주·세화학원(세화고 학교법인)이 서울특별시교육감을 상대로 제기한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취소 처분을 ‘위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왜 2019년 교육청의 자사고 취소 처분을 위법하다고 봤을까.
◆평가기준 늦게 알려주고 소급 적용한 서울시교육청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운영성과 평가계획을 2018년 12월27일 두 학교에 전달했다. 2019년 4월 서면평가가 시작되기 불과 4개월 전이다. 교육청은 평가가 시작되기 4개월 전에서야 새로운 평가계획을 통보했고, 이를 토대로 평가를 진행했다. 교육청은 평가기준을 소급, 2015년 3월부터의 행적을 평가하면서 새로운 기준을 적용했다.
재판부는 “2019년 평가계획에서 신설·변경된 교육청 재량지표와 ‘감사 및 지적사례’ 평가지표를 비롯해 피고(서울특별시교육감)가 평가지표와 평가기준에 중대한 변경을 가했고, 평가대상 기간이 이미 대부분 도과한 후 그와 같은 기준을 이 사건 학교의 운영 성과에 소급해 적용했다”며 “처분 기준 사전 공표제도의 입법취지에 반하고 재평가를 거친 재지정제도의 본질 및 적법절차원칙에서 도출되는 공정한 심사 요청에 반한다”고 밝혔다.
일정 기간마다 자격을 갱신하는 자사고의 경우 기준을 미리 알려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교육청이 이를 어겼다는 의미다.
◆새로 들어온 지표가 자사고 등락에 매우 중대한 영향 미쳐
재판부는 2019년 운영성과 평가계획에 새로 반영된 지표가 두 학교의 자사고 재지정 여부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2019년 운영성과 평가계획에는 △고교입학전형 영향평가의 충실도(4점) △교실수업 개선 노력정도(5점)와 서울시교육청 고유 재량지표인 △학생참여 및 자치문화 활성화(3점) △안전교육 내실화 및 학교폭력예방·근절 노력(3점) △학부모 학교교육 참여 확대 및 지역사회와의 협력(3점) △학교업무정상화 및 참여·소통·협력의 학교문화 조성(3점)이 포함됐다. 감점 평가지표로서는 ‘감사 등 지적 사례’의 감점 기준이 최대 -12점까지 확대됐다.
두 학교 중 최종 점수에서 65점을 받은 한 학교는 위 지표로 인해 17.2점이 감점됐고, 최종 점수 67.5점이었던 또 다른 학교는 9.9점이 깎였다. 자사고 재지정 통과 점수가 70점인 것을 감안하면, 두 학교 모두 새로 반영된 지표에서 점수가 깎이며 자사고 재지정에서 탈락하게 된 셈이다.
재판부는 “(새로운 평가 지표들이) 세화고와 배재고에 대한 평가에서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법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위헌 아냐”
재판부는 다만 2025년 자사고 등의 일괄 폐지를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포괄 위임 금지원칙 등에 위배돼 위헌이라는 자사고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포괄 위임 금지원칙이란 특정 행정기관에 입법권을 일반적·포괄적으로 위임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다.
재판부는 “법률로 정하고 있는 학교교육 제도에 관한 사항 중 일부가 적용되지 않고 폭넓은 자율권을 향유하는 학교로서 자사고의 설립 근거를 (법률에서) 정하고 있다”며 “자사고 도입제도의 취지에 비춰 ‘학교교육 제도를 포함한 교육 제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해 그 세부적 사항을 일일이 법률로 정하는 것보다는 행정법령에 위임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판시했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자사고의 특성을 고려하면 포괄 위임 금지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는 취지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위헌” 자사고 등 제기한 헌법소원이 관건
재판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위헌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교육부가 2019년 자사고와 외고·국제고를 2025년 일반고로 전환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자 해당 학교 24곳이 헌법상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자사고가 이날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헌법소원이 기각된다면 자사고는 2025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법조계는 국가가 자사고에 준 신뢰에 대한 판단이 재판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본다. 국가가 자사고를 유지해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사립 학교들이 자사고로 전환한 것이기에 이 신뢰가 얼마나 인정될 지가 중요하단 것이다.
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지음)는 “자사고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 국가가 유도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자사고에게 신뢰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며 “해당 신뢰가 헌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인지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