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이혼소송중 수백억대 부당증여 의혹

가정 못 지키는 가족법
2015년 1심 선고 전후부터
내연녀에 거액 현금·부동산 건네
법조계 “재산 분할 염두” 지적
현재 1100억대 재산 법정공방
증여 취소 후 재산정 여부 관심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뉴스1
헌법재판소가 2015년 간통죄를 폐지하는 결정을 내린 뒤 가족 관계가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다. 법원은 이혼 소송에서 가정 파탄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도 받아들이는 ‘파탄주의’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실적으로 혼인생활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 됐을 경우 가정 파탄의 책임 유무를 묻지 말고 이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흐름이다. 이런 세태로 가정 해체 현상은 심화하고 혼인 파탄의 책임이 없는 배우자와 자녀는 법적 사각 지대에 놓이게 된다. 취재팀은 ‘범현대가의 축출이혼’ 사례를 취재하면서 민법의 가족 관계 조항이 정작 가족을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봤다.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상대 배우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랬다. 정몽익 KCC 글라스 회장 이혼 사건을 통해 현행 가족법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

 

범현대가(家)인 정몽익(59) KCC글라스 회장이 중혼(重婚) 상태인 내연녀에게 수백억원대 자산을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정 회장은 아내 최은정(58)씨와 두번째 이혼 소송 중이다. 정 회장이 내연녀와의 사이에 자식을 두고 이혼을 원치 않는 부인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관련, 현행 가족법이 혼인 파탄의 책임이 없는 배우자 보호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 회장은 2015년부터 최근까지 내연녀 A씨에게 수십억원씩 수차례에 걸쳐 현금 100억원 이상을 증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모친인 조은주 여사도 2000년대 중반 A씨에게 현금 20억∼30억원 규모를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증여 사실은 정 회장 부부의 1100억원대 이혼소송 등에서 언급된 적이 없는 내역이다.

 

이 외에도 A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빌딩, 삼성동의 아파트 등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남권 부동산중개업계는 청담동 빌딩에 대해 140억∼150억원 수준, 삼성동 아파트는 15억∼17억원대로 각각 평가했다. 앞서 정상영 명예회장은 2017년 8월 KCC 계열사이던 KAC(코리아오토글라스주식회사, 이후 KCC글라스로 합병) 지분 5만주(0.25%)를 정 회장의 혼외자에게 증여한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형인 정몽진 KCC 회장도 2020년 4월 정 회장의 혼외자에게 KCC글라스 지분 17만여주를 증여해 입길에 올랐다. 정 회장의 혼외자는 현재 KCC글라스 지분 19만여주, 약 100억원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A씨와 혼외자 가족이 보유한 자산은 수백억원대로 추정된다. 법조계에서는 현금 증여 등의 경우 근거가 있다면 사해행위취소소송을 통해 재산을 원상 복귀시킨 뒤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따져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KCC 일가의 A씨, 혼외자에 대한 자산 증여가 본격화한 2015년은 정 회장이 아내 최씨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를 시작한 무렵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혼소송의 승패를 불문하고 종국적으로는 재산분할 다툼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증여일 가능성이 짙다”고 말했다. 또한 법조계 관계자는 “큰 흐름을 보면 정 회장 일가가 A씨에게 여윳돈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재벌가 돈 흐름치고는 독특한 양상”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외조카인 아내 최씨와 1990년 결혼해 1남2녀를 뒀다. 행복했던 것처럼 보이던 결혼생활은 정 회장이 2012년 1월 돌연 가출하면서 파열음이 났고, 이듬해인 2013년 정 회장이 최씨에게 이혼소송을 청구하면서 파탄을 향했다. 정 회장은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A씨와 2006년부터 교제했고 △2007, 2011년 혼외자 2명을 뒀으며 △2015년 A씨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을 전격 공개하며 “혼인이 사실상 파탄 상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2016년 혼인 파탄의 책임이 정 회장에게 있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고, 상고인(정 회장)의 상고 주장도 이유가 없다면서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정 회장은 3년 뒤인 2019년 다시 최씨를 상대로 이혼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례가 곧 변할 것”이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최씨는 그간 “가정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다가 올해 초 이혼 반소(맞소송)를 냈다. 앞으로 정 회장과 최씨의 이혼소송은 정 회장 등 범현대가의 ‘축출이혼’(잘못이 없는 배우자를 내쫓는 이혼) 여부, A씨 및 혼외자가 축적한 재산의 재산분할 대상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의 재산은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 취재팀은 정 회장에게 전화와 문자로 사실관계 여부 확인과 해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후 정 회장은 전화기를 꺼놓아 연락이 닿지 않았다. KCC글라스 측은 “회장님의 개인사여서 답변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특별기획취재팀=조현일·박현준·김청윤 기자 con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