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저우에서 식당을 하는 마씨는 디지털 위안화 실험에 참여하기 위해 ‘전자지갑’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실험 일주일 후 마씨는 “위챗페이나 알리페이와 달리 수수료가 없었다”며 “그래도 전자지갑과 다른 결제 앱을 같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물교환 → 조개껍데기 등 실물 화폐 → 금 등 금속화폐 → 지폐 → 디지털 화폐(?)’
◆자금 흐름 파악… 체제 강화 수단 가능성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지갑이라면 디지털 위안화는 지갑에 있는 돈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법정화폐다. 본원통화(M0)로도 불리는 현금 자체를 말한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등을 사용하려면 앱을 현금이 들어 있는 은행 계좌와 연동해야 하는데, 디지털 위안화가 이 현금인 것이다. 현금이기 때문에 전자지갑에 넣어둔 돈에는 이자가 쌓이진 않는다. 또 디지털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갖춘 상점은 결제를 거부할 수 없다. 거부란 곧 현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인이 디지털 위안화를 쓰는 방식은 인민은행 또는 공상은행, 건설은행 등 주요 은행에서 ‘전자지갑’ 앱을 내려받아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다른 이의 지갑으로 돈을 보내거나 본인이 받을 수 있다. 은행 계좌가 없어도 사용하는 데 문제는 없다. 다만 잔액 부족 등 문제가 생길 때 결제를 원활하게 하려면 연동 계좌를 설정해 놓는 게 편하다. 그 이후는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와 방식이 똑같아 불편함은 없다.
더구나 디지털 위안화는 비행기, 산간벽지 등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도 ‘펑이펑(부딪치기)’으로 부르는 NFC(가까운 거리에서 무선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 방식을 써서 결제할 수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가상화폐인 비트코인과 달리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개인이 단 몇 위안을 쓰더라도 자금 이동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국내외 자금 흐름, 이동 실태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돈세탁, 세금 탈루 등 각종 범죄 방지나 처벌에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확보한 개인정보는 현 공산당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될 가능성도 크다.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통해 수집된 개인정보 등을 국민 통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기축통화 달러에 도전장… ‘화폐 전쟁’ 예고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에 속도를 내는 것은 미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국제경제 질서에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다. 미국과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달러 위주의 현 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어 ‘화폐 전쟁’을 예고한 셈이다.
중국은 최근 인민은행 산하 디지털통화연구소가 국제결제시스템망(SWIFT)과 공동 출자해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SWIFT는 전 세계 200여개국 1만1000여개 금융사 간 국제 결제를 중개하는 기구이자 시스템이다. SWIFT는 기축통화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입김이 강한데 이에 맞서 중국이 합작사 설립을 통해 안전판 조성에 나선 셈이다. 홍콩의 자치권 훼손 시 미국이 SWIFT에서 중국이나 홍콩을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후 합작사 소식이 나온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와 함께 인민은행은 홍콩·마카오와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는 시험에도 나선다. 국내를 넘어 국가 간 통용 방식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또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 블록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안에서 디지털 위안화 활용을 늘려 존재감을 키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를 언제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할지 아직 밝히지 않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2022년 2월로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 직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위안화의 국제화는 중국의 자본 규제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안화가 달러처럼 기축통화가 되려면 사용량이 늘어야 하는데, 그 전제가 주요국 통화와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 자체의 금융 규제로 위안화의 유동성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가 간 환율과 수수료 산정 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이지만 위안화의 위상은 여전히 초라하다. SWIFT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국제 지급 거래에서 위안화 비중은 1.91%에 그쳐 달러(38.96%), 유로(36.04%), 파운드(6.7%)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미·중 갈등으로 미국의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위안화 사용을 크게 늘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쉬치옌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연구원은 “디지털 위안화가 국제화하려면 디지털 기술 외에 가장 근본적인 금융개혁이 필요하다”며 “인민은행이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금융 계좌의 완전한 자율화로 금융 시장이 개방돼야 국가 간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