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공공택지를 조성하고 공공주택을 지어 분양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은 일탈을 넘어 범죄에 가깝다. 2일 LH 임직원들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참여연대 관계자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LH 내부에서는 “우려했던 것이 터지고 말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LH 내부 한 고위인사는 “신도시 같은 굵직한 국책사업을 하다 보니 유혹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유혹을 우리 임직원들이 이겨내지 못한 것이어서 참담하다”고 말했다.
일부 토지에서는 2·4공급대책을 통해 신도시 발표가 나자 대대적인 나무심기가 벌어진 정황이 발견됐다. 통상 토지에 나무가 심어져 있으면 보상금 규모가 커진다.
토지 매입 금액의 절반 이상은 대출로 충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김태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변호사)은 “(대출이) 특정 은행에 몰려 있는 게 많다. 한 건당 10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고 상당 부분 대출을 받았다”며 “확신이 없다면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LH 직원들이 대부분 농지를 사들인 점도 투기 가능성을 짙게 한다. 김남근 참여연대 실행위원(변호사)은 “농지를 매입하려면 영농계획서를 내야 하는데 LH 직원이 농사를 병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허위·과장 계획서를 제출한 투기 목적의 매입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민변 조사 결과 한 직원이 서로 다른 시기에 2개 필지를 매입하는가 하면, 배우자 명의로 함께 취득하거나 퇴직한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와 공동 취득한 사례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의혹은 빙산의 일각”… 국토부 전수조사 착수
참여연대와 민변은 분석 대상을 확대하면 이 같은 투기 의혹이 더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사전 투기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제보 토지 주변의 일부 필지만 특정해 단 하루 동안 찾아본 결과”라며 “광명·시흥 신도시 전체로 확대해 배우자나 친·인척 명의로 취득한 경우까지 조사하면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기 명의나 배우자, 지인과 공동으로 유사한 시기에 해당 지역의 토지를 동시에 매입한 것을 볼 때, 이런 잘못된 관행이 많이 있을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LH와 국토교통부가 전수조사에 나서기로 하면서 투기 사실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LH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며 “관련 법령 등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투기 의혹을 철저히 조사할 계획”이라며 “위법사항이 발견될 경우 수사 의뢰 또는 고소·고발 등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공공주택특별법’은 업무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참여연대·민변은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감사원은 “공익감사 청구가 접수되면 해당 내용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권구성·나기천·곽은산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