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18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적은 소득 때문에 기본적인 영양섭취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취약계층의 식품비 지출은 전체 가구의 평균에 비해 크게 낮고, 영양 부족은 물론 잦은 인스턴트 섭취로 인한 비만 등 유병률도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취약계층의 건강 악화는 향후 보험료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 지출을 가져온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영양상태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강화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급자 43% 에너지 섭취 부족… “지원금 모자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정부의 취약계층 농식품 지원체계 개선방안’(2017년) 연구에서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원자료를 이용해 최저생계비 이하 가구의 식품소비 지출을 분석했다.
일반 가구의 1인당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액은 월 18만9909원인 반면 중위소득 29% 이하 가구의 1인당 식품비 지출액은 16만2081원으로 전체 평균의 85.3% 수준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육류(73.5%), 우유류 및 계란류(71.6%), 과일류(78.6%) 소비가 일반 가구에 비해 낮았다.
설문조사 결과 식품소비 충분도는 5점 만점에 2.92점에 그쳐 취약계층 스스로 식품소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독거노인(2.45)과 편부모가구(2.58)가 특히 낮았다. 식품소비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비 지원 및 식품·식사 지원을 받고 있으나 부족해서’(32.9%)였다.
부족한 식품소비는 영양 부족으로 이어진다.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2016~2018년)에 따르면 중위소득 30% 미만 가구의 에너지섭취량은 전체 평균의 88.1% 수준이었다. 특히 칼슘, 비타민A, 리보플라빈, 나이아신, 비타민C 섭취량이 권장량을 크게 밑돌았다. 중위소득 30% 이하 수급자의 42.7%는 에너지섭취량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질병인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율에 대한 취약계층 유병률을 분석한 결과 소득수준이 낮아질수록 모든 질병의 유병률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고혈압과 당뇨병의 유병률은 중위소득 30% 미만 그룹이 중위소득 50% 이상 그룹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지금까지 정부가 취약계층에 식품비를 지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지원되는 생계급여 등은 식품비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기엔 모자라며 지원금이 다른 용도로 소비되는 경우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경연 보고서는 “다수 부처에서 취약계층 대상 농식품 지원 제도를 운영해 왔지만, 보조금이 다른 비목으로 지출되는 등 높은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며 “농식품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신선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 소비 확대하고 취약계층 건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인가구 4만원 신선식품비 지원해 영양 보충
농림축산식품부는 취약계층의 식품 지출과 영양 실태가 크게 낮은 수준이라는 데 공감하고 계층 간 영양·건강 불균형 완화를 위한 지원에 나섰다.
2017년 ‘지속가능한 농식품 산업기반 조성’을 위한 농식품바우처 시범사업이 국정과제로 선정된 뒤 이듬해 사업 설계안 검토와 타당성 연구, 실제 효과 검증 연구 등을 실시했다.
지난해엔 세종시, 전북 완주군, 경북 김천시, 충남 청양군 4개 지자체에서 1만8180가구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해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
수혜자 설문조사 결과 ‘농식품바우처가 영양보충에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이 5점 만점에 4.44점으로 나타났다. 또 과일을 1일 1회 이상 섭취한다는 응답이 지원 전 21%에서 지원 후 56.5%로 늘어나는 등 과일, 우유, 채소 등 신선식품 섭취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시범사업이 9개 시군으로 확대된다. 강원 평창, 전북 김제, 충북 괴산, 전남 해남, 충남 청양, 경북 예천, 충남 당진, 경남 거제가 참여한다. 각 지자체의 중위소득 50%이하 가구(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가 지원 대상이다.
타 용도로 전환하기 어려운 현물지원과 부정 사용 방지를 위한 전자카드 방식을 혼합한 ‘전자카드방식 현물지원’ 방식으로 지원한다. 수혜자가 농식품바우처가 지급되는 전자카드를 발급받아 지역 참여업체(농협 등)에서 사용하면 된다.
모든 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취약계층의 건강한 식생활과 영양 보충이 목적이기 때문에 신선식품인 국내산 과일, 채소, 흰 우유, 계란만 살 수 있다.
마트에 가기 어려운 도서 지역과 거동불편자를 위해 온라인 주문 및 꾸러미 배달방식도 병행 추진한다.
지원금액은 1인가구 기준 4만원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제시한 최저식품비 24만원에서 취약계층이 소득 및 기존 지원금으로 사용 가능한 식품비 20만원을 뺀 차액을 지원해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함이다.
이용직 농식품부 식생활소비급식진흥과장은 “신선식품 구매 지원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의 식품 접근성을 강화하는 한편 스스로 건강한 식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생산, 소비 체계를 구축하고 국민 영양 안전망을 확충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美, SNAP 가동… 3400만명에 총 582억달러 지원
선진국도 국민 건강을 증진기켜 미래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영양지원책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미국의 보충적 영양지원 프로그램(SNAP·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은 대표적인 국가적인 저소득층 영양 개선 프로그램이다.
1939년 대공황 시기에 처음 시도해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총소득이 연방빈곤선의 130% 이하, 순소득이 연방빈곤선의 100% 이하이며 자산과 근로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SNAP의 월 최대 지급금액은 1인 가족 194달러(약 21만7000원), 4인 가족 649달러(약 72만8000원)다. 2019년 기준 3400만명에 총 582억7000달러(약 69조2000억원)가 지원됐다. 수혜자들이 지원금으로 구매한 품목은 빵·곡류, 우유·유제품, 과일·채소, 육류·생선·가금류 등 주식류가 50% 이상이었다.
미 정부는 SNAP이 직접적으로 농식품 수요 증가를 견인하고, 나아가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파급효과도 크다고 보고 있다. 2019년 미 농무부 산하 경제조사서비스(ERS)는 1달러 식품지원을 통해 1.54달러의 경제효과가 파생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미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취약계층 건강 우려로 SNAP의 월별 지원혜택을 올해 6월 말까지 15%(1인당 월 27달러) 인상했다. 또 푸드뱅크 등 식량구호단체에 식량을 지원하는 긴급 식량지원 프로그램에도 오는 9월 말까지 4억달러 투자하기로 하는 등 취약계층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은 저소득 가정에서 건강한 식습관을 갖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부터 ‘건강한 출발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건부가 운영 중이다. 저소득 임신부 및 4세 이하의 아동을 대상으로 우유, 과일 및 채소, 조제분유, 비타민을 구입할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한다. 임신 여성과 1세 이상 4세 미만 아동에 매주 3.1파운드(약 4800원), 1세 미만의 영아에 매주 6.2파운드를 지원한다. 종이형태 바우처로 제공되며 ‘Healthy Start’(건강한 출발) 스티커가 부착된 영국 내 3만여개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2020’의 빈곤경감 목표에 따라 빈곤율을 낮추고 사회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2014년 ‘식품 및 생필품 지원사업’을 도입했다.
EU 고용총국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연간 5억유로(약 6744억원, 회원국은 최소 15% 추가부담) 수준의 EU 예산을 사용한다. 저소득 가구(빈곤선 이하의 극빈층)에 식품과 생필품을 제공하며 회원국이 식품과 기초생필품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두 종류를 모두 지원하는 방안 중 선택할 수 있다. 식품은 곡물, 유제품, 분유, 설탕, 육류, 채소, 이유식, 식용유 등을 꾸러미, 식사 등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고 생필품은 기초 위생용품, 의류, 침낭, 학용품 등을 지원한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공동기획: 세계일보·농림축산식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