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1시50분쯤 대구 수성구 대구지검 앞.
청사 정문 앞에는 각각 ‘윤석열 총장님 만세’, ‘윤석열 탄핵’ 피켓을 든 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이들은 윤 총장 방문 20분 전쯤부터 서로 상대를 향해 “당신들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라며 핏대를 세웠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태운 검은색 제네시스 승용차가 모습을 드러내자 윤 총장 응원 피켓을 든 지지자들과 윤 총장을 비판하는 시민단체 쪽 인사들이 한데 엉키며 고성이 오갔다.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총장님 행보를 응원합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오랜만에 대구를 찾은 윤 총장에게 꽃다발과 악수를 건네며 이같이 치하했다. 권 시장 방문은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청사에 들어서기 전 윤 총장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에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담담하게 “국민 보호는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라고 답했다.
윤 총장이 이날 중수청 관련 취재진 질문에 “지금 진행 중인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하자 윤 총장을 수행한 한 검찰 관계자는 윤 총장이 언급한‘부패완판’이 “부패가 완전 판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윤 총장이 야권의 ‘검수완박’에 대응하는 ‘부패완판’이라는 줄임말을 사용하자 윤 총장이 대국민 여론전을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중수청 설립 등 검찰개혁 움직임을 ‘부패’라고 규정하면서 국민들에게 중수청을 막아 달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여권이 중수청법을 강행할 수 있는 국회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윤 총장이 중수청을 막아낼 수단은 여론의 지지밖에 없는 현실이다.
윤 총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수청과 관련한 비판 입장을 쏟아내고 있다. “적절치 못한 방식”이라는 정부와 여당의 지적에도 연이틀 언론을 통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이에 윤 총장 측은 “정식 인터뷰가 아니라 기존 언론보도에 대한 설명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윤 총장은 ‘반부패수사청’이나 ‘금융수사청’, ‘안보수사청’ 신설을 중수청의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여론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윤 총장은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윤 총장은 중수청법을 강행하면 임기 전에 사퇴할 수 있느냐는 취재진 질의에 “지금은 그런 말씀을 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퇴 후 정치권으로 갈 의향이 있는가라는 물음에도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자중’ 발언에 대해서는 “제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했다.
법조계에선 윤 총장이 대안으로 내놓은 ‘반부패수사청’ 등의 대안을 여권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정부가 추진 중인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인데 이들 기관은 수사·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윤 총장이 직접 구체적인 타협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검찰과 여권 사이에 일종의 대화 창구가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이날 “검찰 내부에서 이런 생각이 아직 주류적 담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면서도 “검찰 총수께서 하신 말씀이니 상당히 무게감을 갖고 참고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여지를 남겼다.
대구=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