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엄마랑 같이 가서 장기기증 등록하자.”
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에 빠진 뒤 다시는 일어나서 가족의 따뜻한 손을 잡지 못했다. 딸 이혜진(37)씨는 생전에 엄마의 소망이었던 장기기증을 실천하기로 가족과 뜻을 모았다.
◆“고인의 고귀한 희생은 훌륭하셨습니다”… 유족을 위로한 편지
이씨는 지난 2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고 감사편지를 받은 날을 떠올렸다. 예상치 못하게 수혜자가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이 컸던 듯하다.
그가 공개한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자필 편지에서 강 교수는 “갑자기 큰일을 겪게 되어 얼마나 상심이 크실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라며 “저희 신장 혈액투석 환자 중 한 분이 이식수술을 오 늘밤 받게 되었다”며 “환자분께는 10년 이상의 힘든 투석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행복한 기회지만, 김경숙님 가족들께는 너무나 큰 고통일 줄 압니다”라고 위로의 말부터 건넸다.
강 교수는 이어 “고인의 고귀한 희생은 많은 분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훌륭한 일이지만, 가족들께서는 장기기증을 결정하기가 절대로 쉽지 않았을 줄 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저희 의료진, 환자와 가족분들을 대신하여 이렇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고인이 부디 평온한 휴식을 취하시도록 마음속 깊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겠다”며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씨가 이 편지를 읽는 동안 함께 모였던 가족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수혜자께서 오랫동안 행복하시기를”… 기증자 가족의 답장
장기이식법에 따르면 장기 기증자 측과 수혜자 측은 직접 만날 수 없다. 금전 등이 오갈 수 있다는 우려에 양측이 상대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게 규정한다. 이에 장기 기증을 한 유족은 수혜자의 수술 경과와 회복 여부가 궁금해도 알아볼 수 없다. 이씨 역시 “장기 기증자 측은 수혜자를 알 수 없어야 한다고 본다”고 동의했다.
다만 그가 강 교수의 편지를 받고 엿새 후 직접 쓴 답장에는 적잖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씨는 어머니의 신장을 이식한 환자가 앞으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강 교수 덕분에 한 사람의 삶이 연장된 데 대한 감사함을 담았다고 한다.
‘강영선 교수님께’라고 운을 띄운 이씨는 “교수님의 편지가 가족들의 마음에 위로가 됐다”고 먼저 고마워했다. 아울러 “큰 슬픔에 잠겨 있기는 하나, (엄마가) 저희 주변에 살아가고 계시다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잘 지내려 한다”고 안부도 전했다.
특히 10년의 투석을 끝낸 환자가 이식수술이라는 기적을 마주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는 이씨는 “저희 엄마의 신장이 아직 살아서 뛴다고 생각하니 잠시나마 슬픔이 사라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희 엄마는 일찍 떠나셨지만, 기증받으신 분께서는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편지를 맺었다고 한다.
이씨는 “삶을 마무리하며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자체가 정말 기적이라 생각한다”며 “자기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연장된다는 건, 곧 내 삶도 연장돼 오래오래 행복해지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이번 장기기증을 통해 깨달은 바를 통화에서 밝혔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갑작스레 찾아온 불행 앞에서 내린 가장 용감하고 아름다운 결정이었다”며 “숭고한 베풂은 여러 의미로 우리 사회에 감동을 주고 있다”고 김씨 가족을 거듭 위로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