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독일을 다녀오던 중, 마트에 들려 맥주 한 캔을 구입할 일이 있었다. 당시 가격은 0.29유로. 우리 돈으로 약 390원. 맥주가 300원대인 것이다. 독일이 이렇게 맥주가 저렴한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국과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주세가 거의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맥주는 술이 아닌 생활 속의 음료로서 생각하기 때문.
이러한 세법은 독일 주변의 유럽 국가에도 적용됐다. 맥주 및 와인은 술이라고 생각을 잘 안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술은 무엇일까? 바로 위스키, 코냑(브랜디), 보드카, 아쿠아 비테, 등 발효주를 끓여 얻은 증류주가 진짜 술이라고 보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18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러한 맥주 및 와인에 알코올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힘이 난다고만 생각했을 뿐.
또 하나 맥주를 즐겨 마신 이유는 유럽인들은 숲 속에 흐르는 강에는 정령이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화 해리포터,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등을 보면 숲에 사는 다양한 유령 및 요정이 있는 것만 봐도 숲과 물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물이 오염되다 보니 맥주를 더욱 많이 마셨다는 최근 연구도 있다.
비교적 좋은 물이 나오는 지역으로는 체코의 플젠 지방을 들 수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연수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1842년 발효 능력이 좋은 바이에른의 라거 효모가 플젠에 도입되고, 바이에른의 순한 홉, 미네랄 함량이 낮은 연수로 빚은 필스너(Pilsner) 맥주가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체코 부드바르(Budvar) 지역에서 나온 맥주는 미국으로 가서 버드와이저(Budweiser)가 되고, 한국의 카스, 하이트, 클라우드와 같은 맥주도 결국 이 필스너 공법의 맥주가 된다. 즉 현존하는 맥주 중 90%가 이러한 맥주 스타일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부드바르(Budvar)와 버드와이저(Budweiser)는 상표권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독일과도 계속 필스너 원조로 논쟁 중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