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유력 대선주자로 호명돼온 윤 총장의 사퇴로 차기 대선구도가 크게 출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가 1년 남은 시점이자 4·7 재보궐선거를 한 달 앞둔 절묘한 시점에 그는 말했던 대로 '직'을 던졌다.
뉴스1에 따르면 지난 2일 검찰 수사권 박탈 시도를 막을 수 있다면 총장직을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한 언론 인터뷰 이후 이틀 만이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에서 검찰총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 윤 총장은 사직 의사를 밝히면서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간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해 확답을 피해온 윤 총장은 이날 작심한 듯 거취에 대해 "어떤 위치에 있든지…"라고 표현해 여지를 남겼다.
여권을 향해 "내가 밉다고 국민을 인질 삼느냐"고 일갈한 윤 총장은 오는 7월까지인 임기를 채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174석을 가진 거대여당이 밀어붙이는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추진 등에 무력감을 느낀 그가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윤 총장이 사의를 밝히며 검찰 조직에 대한 발언보다는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에 방점을 찍은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그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준 분들, 제게 날선 비판을 주셨던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며 지지자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현직 검찰총장으로서 이례적인 대중적 지지를 받은 점,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점 등을 두루 감안한 발언으로 읽힌다.
청와대가 자제하라고 경고했지만, 윤 총장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검찰의 수사권 박탈은 검찰 존폐가 달린 일일 뿐 아니라 헌법정신 위배라는 생각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윤 총장은 전날(3일)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며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추진에 '부패'라는 프레임을 걸었다. 또한 일선 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작심 발언했다. 이를두고 청와대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를 찾았다는 점에서 이목이 쏠렸다. 윤 총장은 "대구는 제가 27년 전에 늦깎이 검사로 사회생활을 첫 시작한 초임지로, 감회가 특별하고 고향에 온 것 같다"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윤 총장의 대구 방문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직접 나와 환영하고 지지자들이 대거 몰리며 대선주자로서의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윤 총장이 당장 정계 진출을 선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 3월 대선을 준비하려면 최소 1년은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권 도전을 위한 최적의 시기에 사퇴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대표발의한 이른바 '윤석열 출마금지법'의 통과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퇴 시점이라는 분석을 제기했다. '현직 검사·법관이 공직선거 후보자로 출마하려면 1년 전까지 사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검찰청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대선 출마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이 법이 통과되면, 윤 총장은 내년 3월 9일 차기 대선이 열리기 1년 전인 이달 9일까지는 물러나야 한다.
한편 여당 지도부는 윤 총장 사퇴에 대해 "유감", "야당발 선거기획", "대구 대선 출마 리허설"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윤 총장이 하필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확정된 이날 돌연 사퇴를 발표한 것은 철저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라며 격분했다. '미니 대선'으로 불리는 4월 재보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에서다.
윤 총장의 사퇴 국면으로 당정청이 공들인 4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부산 가덕도 신공항 추진 등이 묻히고 정국의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 간판 대선 주자가 없는 야권에 윤 총장이 등판할 경우 대선구도가 출렁이며 '정권 심판론'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동하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