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도는 여성을 특수고용직이란 구조에 가두고 감수하라고 합니다.“
몇 년 전 아이를 낳고 ‘경력 단절 여성’이 됐던 A씨는 어렵게 학습지 교사가 됐지만, 지난해 수입이 반으로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학습지를 취소하는 이들이 많아져서다. 수업을 하나라도 더 따내기 위해 장거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그는 “수업하는 곳이 서로 멀다 보니 하루에 몇 시간씩 버스와 지하철을 탄다. 추운 날에는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더욱 힘든 건 회사의 태도다. 회사는 수업이 없는 오전에 학교 앞 등에서 학습지를 홍보하라고 강요했다. 무임금으로 시간 외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이다. A씨는 “수입이 너무 줄어 일을 지속하기조차 어려운 구조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이란 이름으로 착취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세계여성의날(8일)을 앞두고 여성 노동자가 겪는 고단한 현실을 공개했다. 여성들은 코로나19로 일자리가 더 취약해졌다고 고백했다.
민노총은 4일 여성 노동자로부터 ‘코로나19로 달라진 노동’ 관련 수기를 공모해 70여명의 사연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민노총에 따르면 많은 여성이 코로나19 이후 더욱 팍팍한 삶을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원 강사인 B씨는 지난해 코로나19로 학원이 휴원하면서 몇 달간 돈을 받지 못했지만, 원생이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느라 숙제 제출과 학부모 상담 등의 업무를 계속했다. 최근에는 5인 이상 집합금지 때문에 수업을 나눠서 하느라 쉬는 날 없이 매일 10시간씩 일하지만, 수업 인원에 따라 돈을 받기 때문에 수입은 그대로다. B씨는 “불안정한 일자리가 얼마나 조바심을 느끼게 하는지, 그 조바심이 사람의 삶을 얼마나 갉아먹는지 모를 것”이라고 썼다.
이날 김규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이나래 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가 발표한 ‘여성 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조사’도 열악한 여성 노동 현실을 보여준다. 이들이 민노총 산하 노조 소속 여성 노동자 889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6.9%는 화장실 때문에 수분 섭취를 제한하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이유로 음식물 섭취를 제한한다는 비율은 30.3%였다. 여성 노동자 3명 중 1명이 근무 중 화장실 이용이 불편해 물이나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장실과 관련해 느끼는 감정은 64.5%가 ‘불안감’을 꼽았다. 특히 학습지 교사 등 이동·방문 노동자의 경우 ‘근무 중 원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대체로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57.8%에 달했다.
한편 코로나19 여파는 여성의 고용 위기로도 이어졌다. 이날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지난해 취업자 수 현황을 보면 2019년 대비 여성 취업자 감소 폭은 13만7000명으로 남성(8만2000명)의 1.6배 수준이었다. 취업자 수 감소 폭이 큰 상위 3개 업종인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교육서비스업에서 전체 취업자 40만5000여명이 줄었는데 이 중 여성 비율이 62%(25만1000명)나 됐다. 15∼64세 여성 고용률은 2019년 57.8%에서 지난해 56.7%로 줄었다. 여가부는 여성 대부분이 코로나19 영향을 많이 받는 대면 서비스산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가 여성 고용에 더 큰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총 78만개의 여성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노동시장에서 여성 참여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