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소소한 이야기·기억 일기 쓰듯 화폭에 담아”

밀레니얼세대 작가 콰야 인터뷰
무표정한 듯 우울한 듯 그림 속 얼굴
밀레니얼 세대들의 공감 이끌어 내
밴드 잔나비 등 앨범 커버로 삼기도
“억지로 웃는 표정보단 무표정이 편안
사람들에게 친근한 감정 전해주고파”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밀레니얼 세대인 작가 콰야(30·사진)는 그림 속에 동세대를 위한 내면의 오두막을 짓는다. 거친 붓질은 이 세대의 서툼으로, 밝고 선명한 색감은 청춘의 찬란함으로 다가온다. 무표정과 우울함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인물의 얼굴은 풍족한 듯하나 외로운 이 세대 특유의 정서를 어루만지는 듯하다. 스노볼을 골똘히 바라보는 소녀, 새 발자국이 남은 눈밭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소년, 고개를 들어 밤하늘과 별을 바라보는 소년 소녀, 우비를 입고 비를 맞는 어느 날. 소소한 순간을 화폭에 옮긴 그림에는 그만의 고유한 느낌이 뚜렷하다. 2019년 밴드 잔나비의 정규2집 ‘전설’ 앨범에 콰야의 그림이 인쇄됐을 때, 소셜미디어에 이미 두 아티스트의 팬이었던 이들이 “와 이런 조합이라니”라며 감탄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콰야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두었던 무표정한 소년 그림은 ‘그 푸른 눈동자에 날 태워줘, 내 방황을 멈추어 줘’라는 잔나비 ‘전설’의 노랫말과 더없이 조화로웠다.

 

동세대의 공감대를 이끄는 그의 그림은 소셜미디어에서 먼저 퍼져 나갔고, 그가 공유하는 그림과 이미지의 힘으로 점차 두꺼운 팬층을 확보해 나갔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5만9000여명. 밴드 잔나비 역시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그림을 보고 앨범재킷 작업을 제안했다. 정우물, 버뮤다(VER.MUDA), 오붓(5but) 등 뮤지션들도 그의 작품을 앨범 커버로 삼았다. 기성세대의 인맥과 자본이 없어도 소셜미디어의 힘을 빌려 일어선 예술가, 아티스트들이 사랑한 아티스트. 여러모로 매력적인 타이틀을 내세울 만도 한데,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너무 과장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만큼만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난 3일 그룹전 ‘제3의 화법’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아틀리에아키에서 그를 만났을 때도, 두고두고 잘 어울리는 명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잔나비 앨범과 커버 그림에 대해 “너무 많이 언급돼 부담”이라고 했다. 과도한 욕심, 치열한 경쟁, 성공 등과 같은 단어들로부터 벗어나 우리가 각자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함을 그는 예민하게 깨닫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편안한 감정을 오래도록 전하고 싶다는 그의 작품은 오는 27일까지 갤러리 아틀리에아키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다음은 일문일답.

 

―상명대 패션디자인학과를 나와 디자이너로 일하다 전업작가로 변신한 이력이 특이하다.

 

“기간이 짧다. 2년여. ‘일을 했다’고 하기에는 직장인 분들에게 죄송한 얘기고, 잠깐 겪은 것이다. 학교 마무리될 때쯤 작은 의류 브랜드에 들어갔다. 그때도 작업을 병행했다. 그땐 작업을 업으로 할 거란 생각은 못했고 혼자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오일파스텔로 종이에 그리거나 비교적 다루기 쉬운 재료들로 했다. 작업에 좀더 집중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 전업을 자연스럽게 선택했다.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몇 달 정도는 작업만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간 안에 나 스스로 납득이 될 만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한다면, 그때 다시 일을 구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5년 전이다.”

‘아마도 행운이 찾아올거야’(2020)

―푸른 눈의 소년 이미지는 콰야의 대표적 이미지다. 주로 인물화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대표적 이미지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저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들을 가지고 작업으로 풀어낼 때도 있고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 안에서 작업한다. 평면작업을 통해 어떤 시간을 멈춰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잡아두고 싶은 이야기,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다. 가령 ‘아마도 행운이 찾아올거야’(2020)는 정신적으로 피곤했던 어느 날, 여행지의 뜰에서 우연히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던 날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런 사소한 발견 하나로 기분이 나아질 수 있고, 내 일상이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던 날이다.”

 

―최근 어린 시절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개별적 공간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시간 속에서 친구들과 만난다거나 다른 관계가 진행되는 계기가 줄고 작업실에 혼자 있다 보니 어린 시절 생각을 많이 했다. 과거를 더듬어 기억나는 것 중 담고 싶은 이야기를 지금의 시선으로 작업해 남겼다. 일기 쓰듯 기록하는 매개로 삼아 화면에 남기는 거다. 거창한 걸 담는다기보다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화면에 잡아둔다.”

 

―소셜미디어에서 먼저 유명해졌다. 많은 작가들이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지만 자신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다. 어떻게 호응을 얻었나.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한 지 5년 정도 됐다. 호응 이유는 분석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아 잘 모르겠다. 그저 처음엔 막연하게 작업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하루에 하나씩 작업을 공유하자고 했다. 목표를 다 지키진 못했지만, 그런 생각으로 했다. 그래야 나도 작업에 더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밤하늘에 수놓은 별처럼 떠있는 달처럼’(2020)

―밴드 잔나비의 앨범 커버를 작업할 때도,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을 받았다고.

 

“잔나비와의 작업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협업 제안 연락을 받아 보면, 거의 제 작품과 결이 비슷한 경우다. 그 전에 소셜미디어 등에서 많이 서칭해보고 연락을 주셨다는 느낌이 든다. 저 역시 좋게 보고 있던 아티스트가 연락을 해오기도 한다. 잔나비가 앨범 커버 작업을 제안해오기 전에 이미 저는 잔나비 음악의 팬이었다. 기존에 해놓은 작업을 보고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기도 하고, 뮤지션의 경우, 협업 제안을 하고 보내주신 가이드를 받고 그걸 들으면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또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거나, 이 곡에 이런 이야기가 들어갔으면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기에 맞춰서 작업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분들의 음악이니까 그분들의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과물이 나오면 스케치를 전달해 또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직접 만나 보면 나와 결이 맞구나 싶을 때도 있고 과정 속에 느낌을 맞춰간다.”

 

―사람들이 콰야 그림 속 인물 특유의 표정에 궁금해한다.

 

“억지로 짓는 표정이 불편하지 않나. 웃고 있는 게 좋아보일 수 있지만, 그런 표정을 짓기 위해서도 얼굴에 어떤 힘이 들어가야 한다. 그보단 무표정한 게 훨씬 더 편안한 상태이지 않을까. 제일 편안한 표정을 담고 싶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책장에서 가끔 꺼내보는 책이 있지 않나. 음악도 가끔 생각나는 노래가 있고. 듣자마자 ‘와’ 하며 전율을 느끼거나 하는 그런 음악 말고 가끔씩 생각나는 음악처럼 쉽고 편안하게, 가끔 꺼내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편안한 작업으로 꾸준히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와’ 하는 말이 나오는 작품이 좋은 것 아닌가.

 

“꼭 엄청 대단한 걸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슈퍼스타가 될, 그런 작업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걸 편안한 마음으로 해나가면서, 그때의 내 마음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편안하고 친근한 감정말이다. 대단한 그림들이 실린 도록이나 아트북을 사서 한번 보고 다시는 펴보지 않는 것보다, 계속 자꾸 찾아볼 수 있는 게 좋은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하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범해보여도 그 안에 의미 있을 수 있고, 가볍게 보여도 무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