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미얀마로부터 군사쿠데타 소식이 날아들었다. 2015년부터 5년간 이어졌던 아웅산 수치의 민간 정부가 무너졌다.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과 정부 주요 인사를 체포한 군부는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쿠데타를 공식 선언했다. 2020년 11월 있었던 선거에서 선거부정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하며 1년간 비상 통치 후 선거를 다시 실시하겠다고 했다. 미얀마 국민은 이런 군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군부의 재등장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시위에 대한 군부의 강경 진압은 결국 시위대의 사망으로 이어지더니 그 수는 매일 늘어나고 있다. 정부 인사와 민족민주동맹 인사를 포함, 1700여명이 구금되어 있고 구금 중 고문으로 인한 사망자도 나오고 있다.
2011년 군부 스스로 정치개혁을 시작했을 때 미얀마에도 봄이 찾아오는 줄 알았다. 2015년 선거에서 아웅산 수치의 민족민주동맹이 승리해 정부를 구성했을 때 민주화는 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군부의 로힝야족 탄압을 보고도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아웅산 수치에 실망하면서도 민주화는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긍정론이 너무 안일했던 것은 아닐까? 2008년 군부가 만든 현 미얀마 헌법은 의회 의석의 25%를 군에 자동 할당한다. 이로써 의회 75% 동의가 필요한 헌법 개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헌법상 미얀마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 아닌 군사령관이다. 2015년 출범한 민간 정부는 군에 대한 통제권이 없었다. 군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표면적으로 순항하는 듯했던 민간 정부는 늘 군부의 칼끝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더 멀리 보면 오늘 미얀마의 비극은 1962년 군부가 처음 쿠데타를 일으킨 시점부터 예견된 사태다. 영국 식민통치가 그어 놓은 국경선 안에서 어색한 동거를 하던 버마족과 소수종족의 관계는 버마라는 신생 독립국의 통합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식민통치 결과로 탄생한 다종족 국가는 하나같이 국민국가 형성과 통합에 애를 먹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소수종족과 인구 70%를 넘는 버마족 사이 복잡한 관계를 강압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렇게 시작된 군부 통치는 아웅산 수치 정부가 들어선 2015년까지 53년 동안 거의 단절 없이 지속하였다. 이 기간은 소수민족과 무장투쟁, 인권 유린,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점철되어 있다. 2015년부터 5년간의 민간 통치는 미얀마 독립 이후 73년간 역사 중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