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勇氣)라는 두 글자.
사전상으로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를 말한다. 물론 이 외에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 ‘당당히 맞서는 것’, ‘도망가지 않는 것’ 등 때에 따라 다양한 풀이를 붙일 수 있다.
인문 도서 ‘두려움과 용기의 학습’의 저자이자 스페인의 저명한 철학자인 호세 안토니오 마리나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핑계 대거나 도망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것’이라고 용기를 정의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용기’는 무엇인가. 여기 용기에 관해 생각해볼 두 사례가 있다.
20대 청년은 한밤중 근무 중인 편의점에 들어온 ‘묻지마 폭행’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매장 문을 잠근 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안정을 되찾도록 침착함을 유지했고, 두 10대 학생은 딸을 사칭한 문자메시지 사기에 넘어갈 뻔한 노인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도왔다.
결과만 놓고 보면 누구나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막상 직접 맞닥뜨렸을 때 손 내밀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일들을 마주하고도, 침착한 대응으로 용기를 발휘한 이들에게 많은 누리꾼은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짧게나마 이들과 직접 통화한 내용을 덧붙여 당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소개해본다.
◆“살려주세요”라던 ‘묻지마 폭행’ 피해자…침착히 대응한 청년의 용기
지난 9일 오전 3시45분쯤.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한 편의점. 피 흘리는 남성이 문을 열고 매장에 들어오더니, 살려달라며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행인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며, 연신 살려달라거나 숨겨달라고 했다.
이날 야간 근무 중이던 조규영(22)씨는 다친 남성을 매장 내의 직원 사무실로 이끌었다. 곧바로 112에 신고한 그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피해자를 안정시키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에 떨며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남성에게 마실 물을 건넨 조씨는 일단 매장 문부터 잠그기로 했다.
혹시라도 가해자가 매장에 들어와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판단해서다.
조씨는 다시 경찰에 연락을 취해 “매장 문을 잠갔으니, 도착하시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의 침착한 대응으로 남성은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경찰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응급대원들의 치료를 받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피해자의 아버지가 직접 매장에 찾아와 조씨에게 ‘치료가 잘 됐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씨는 지난 1월 중순 전역한 뒤, 두 달째 이곳에서 근무 중인 대학생이다.
누군지 모를 가해자가 매장에 들어와 2차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잠재적인 두려움을 아무렇지 않은 듯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2일 통화에서 ‘어떻게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조씨는 평소 긴급 상황 시 어떻게 대처할지 등을 유튜브 영상 등으로 접한 덕이 컸다고 답했다. 각종 사건이나 사고 등을 다룬 영상을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방식으로 여러 돌발상황을 대비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조씨는 “피해자께서 얼른 완치하셨으면 좋겠다”며 “신고를 받고 현장에 빠르게 도착해주신 경찰관분들 덕분에 후속 조치가 잘 이뤄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뭔가 수상한 메시지 같은데…70대 여성의 피해 막은 학생들의 용기
신정빈(18·경동고) 군과 박정호(18·용문고) 군은 지난 11일 오후 1시쯤, 서울 성북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청소년증을 만들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70대 여성 A씨가 이들에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신용카드 사진을 누군가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내야 한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움을 요청했다.
으레 생길 수 있는 일이었기에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막상 한 번도 아니고 A씨가 세 차례에 걸쳐 거듭 도움을 요청하자 신군과 박군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에 박군이 A씨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역을 훑어봤고, 가장 처음 온 메시지의 말머리가 [Web 발신]으로 표기된 점, 자기가 딸이라며 엄마에게 도와달라는 메시지였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전화를 거니 상대방 전화기가 꺼져있던 점 등을 토대로 문자메시지 사기일 가능성을 떠올렸다. ‘Web 발신’과 같은 말머리는 대체로 PC나 기타 프로그램을 이용해 개별 문자메시지 전송 혹은 단체 메시지 전송 등에 쓰이는 방식이다.
신군 등은 메시지 내용이 수상하다며 A씨에게 경찰서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말했고, 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두려워하는 A씨를 성북경찰서로 침착하게 안내하면서 그의 신용카드 해지 과정도 도왔다. 다행히 A씨에게는 어떠한 재산상의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신군은 지난 1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뉴스에서만 보던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겪으니 무척 긴장됐다”고 떠올렸다.
그럼에도 이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 A씨를 도왔다. 아울러 수상한 낌새를 놓치지 않고 경찰서까지 안내한 두 학생에게 A씨는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군은 “비슷한 사례를 목격하실 경우 당사자분을 잘 도와주시면 좋겠다”면서,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는 “똑같이 도와드릴 것”이라고 답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