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UNICEF) 말대로 승자도, 출구도 없는 전쟁이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발발 10년을 맞는 시리아 내전에 대한 얘기다.
사망자는 38만7000명에 달한다. 이 중 약 10만명은 정부 교도소에서 고문으로 숨졌고, 또 다른 10만명이 정부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정부군뿐 아니라 반군들도 민간인들을 구금해 고문하고 처형한다. 시리아 전역의 구금시설은 100개가 넘는다. 어린이 사상자는 1만2000명에 이른다. 20만명은 실종돼 행방을 모른다.
화학무기 사용으로 인한 사망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8월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지역에서 정부군 소행으로 의심되는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해 1400여명이 사망했다. 유엔은 지금까지 시리아 내 화학무기 사용 건수가 38건이고, 이 중 32건은 정부군 소행이라고 밝혔다.
인구 변화 추이를 보면 전쟁의 비극을 실감할 수 있다. 국제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2010년 2136만여명이던 시리아 인구는 2011∼2018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올해 1780만여명으로 급감했다.
시리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약 1340만명은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고, 약 200만명은 극빈층으로 분류된다. 식품 가격은 전쟁 전 5년간 평균치보다 33배나 뛰었다. 청년 절반가량은 아무런 소득이 없고, 학교 밖 아이들은 240만명이 넘는다.
이 같은 외상 못지않게 내상도 크고 깊다. 유엔은 시리아가 국가적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고 본다. 시리아 외과의사 나빌 하산은 영국 인디펜던트 기고에서 “10년간 끊임없는 공격은 병원을 안전한 피난처에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으로 바꿔놨다”며 “주민들은 병원에 와 치료받는 것조차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은 10년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1조2000억달러(약 1363조8000억원)로 추산한다. 지난해 시리아 국내총생산(GDP) 추정치인 370억달러의 32배가 넘는 수치다.
◆세력 지형 ‘복잡’…알아사드, 러시아·이란 지원 등에 장악력 강화
내전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무장단체와 반군들이 난립하며 시리아 내 세력 지형은 더 복잡해진 상황이다. 북동부 지역은 쿠르드족 민병대(YPG)가, 북서부 지역 일부는 옛 알카에다 연계 무장단체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과 반군 자유시리아군(FSA)이 장악했다. 시리아인 약 290만명이 사는 북서부 지역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처럼 자치지역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 다른 반군 시리아민주군(SDF)은 남동부 지역에 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잔당도 올 들어 쿠르드족이 운영하는 하사카주 알홀 캠프에서만 최소 31명을 살해하는 등 영향력이 사라지진 않은 상태다.
이런 세력 지형은 외세의 개입과 무관하지 않다. FSA는 터키, SDF는 미국 지원을 받는다. 터키는 자국 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쿠르드족을 견제하기 위해 반군을 지원하는 한편, 더 이상의 난민 유입을 막으려 국경 지대인 시리아 북부에 주둔까지 하고 있다. 이란은 카타이브 헤즈볼라(KH) 등 친이란 민병대들을 지원한다.
다만 알아사드 정권은 동맹인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 지원으로 영토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최근 장악력을 강화했다. 지난해 3월 정부군과 반군이 아닌 러시아와 터키가 북서부 일대에서 휴전에 합의한 건 이런 맥락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이 끄떡없는 건 정부군의 변함없는 충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친척들과 알라위파(시아파 소수 분파) 동료들이 수십년간 군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다.
정치적 대안의 부재도 한몫한다. 2011년 10월 쿠르드족과 반체제 인사, 젊은 시위자 등이 터키에 모여 시리아 야권을 대표하는 시리아국민위원회(SNC)가 출범했으나 국민들 염원인 정권 축출이나 대안 제시는커녕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도 못했다.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유엔의 노력에도 진척이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5년 12월 새 헌법 마련 등 시리아의 평화 정착 로드맵을 지지하는 결의안 2254호를 채택한 뒤, 4년 가까이 흐른 2019년 10월에야 유엔 중재로 시리아 정부와 SNC가 참여하는 시리아 헌법위원회가 꾸려졌다. 지난 1월 열린 5차 소위원회는 성과 없이 끝났다.
러시아와 달리 미국은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중동 분석가 토머스 피렛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시리아 내전에 관심이 없었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에서) 이라크 주둔 미군 철군을 약속하고 선출돼 중동 복귀를 꺼렸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달 말 시리아 내 친이란 민병대 시설들을 공습하면서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2011년 이후 미국의 시리아 정책은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며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언젠가 고국에 갈 수 있길”…전쟁범죄 단죄 위한 노력도
전쟁을 피해 뿔뿔이 흩어진 시리아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 진정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터키 가지안테프에서 건과일을 판매하는 23세 청년은 AFP통신에 “누군가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했다는 소식을 전한다면 터키에서 단 한 명의 시리아인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지안테프에 있는 시리아 라디오 방송국 로자나 관계자는 “타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시리아인들도 귀향을 꿈꾼다”고 말했다. 이 방송국은 시리아 상황 등을 모국어인 아랍어로 전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한편으론 전쟁범죄 가담자들을 단죄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시리아 난민 약 100명은 NGO인 유럽헌법인권센터(ECCHR) 지원으로 ‘보편적 사법권’ 원칙에 따라 전범들을 하나둘 법정에 세우고 있다. 보편적 사법권은 반인륜적 범죄와 전쟁범죄, 집단 학살은 그 장소에 상관없이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시리아 난민들의 법정 증언 등 용기에 힘입어 알아사드 정권 관계자에 대한 첫 유죄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말 독일 법원은 시리아 전직 정보요원 에야드 알가립에게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는 2011년 시리아에서 아랍의 봄 시위대 30명이 고문을 받을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교도소로 이송해 반인륜적 범죄를 도운 혐의로 기소됐다.
유죄 입증을 위한 물증 수집도 중요하다. NGO인 국제사법책임위원회(CIJA)는 알아사드 정권이 방치한 건물들에 있는 서류더미를 확보하는 일을 한다. 최대 50명의 직원들이 이 작전에 목숨을 건다. 한 직원은 “무장단체들이 건물들을 파괴하지 않도록 그들과 거래했다”며 “가장 위험한 건 전선이 계속 바뀌고 있는데도 서류들을 시리아 밖으로 운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