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너무 추고 싶은데 연습실도, 무대에 설 기회도 없어요.” 고등학생 지연과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희화, 혜진은 비영리 공연기획사에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회사는 이들에게 연습실을 주고, 담당자도 붙여줬다. ‘소름 끼치는’ 춤을 기대했지만 당시 이들의 실력은 너무 못 춰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정정윤 핸드스피크 대표가 기억하는 농인 아티스트 희화, 지연, 혜진과의 10년 전 첫 만남이다. 핸드스피크는 농인의 문화예술 활동 소외와 참여 기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셜벤처다.
지난 12일 서울 은평구 핸드스피크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춤을 배우고 싶어도 청인(비장애인)을 위한 댄스학원뿐이니 춤을 잘 못 추는 게 너무 당연했다”고 회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어를 하지 못했던 그는 필담으로 나눴던 당시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눈을 정말 반짝반짝 빛내며 춤추고 싶다고 말하는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거절당하고 나에게 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고 지친다는 이유만으로 이 친구들이 내민 손을 뿌리치지는 말자고 다짐했죠.”
차세대 농인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것도 핸드스피크의 역할이다. 2018년 창립 당시 소속 아티스트는 세 사람뿐이었지만 지금은 20여명의 농인 아티스트들이 핸드스피크와 함께 한다. 정 대표는 “농인들과 함께 하는 생산·제조업체는 많지만 문화예술 분야는 전무해 선례가 없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면서도 “행복한 일들이 훨씬 많다.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고 말했다. 그는 “비장애인보다 몇 배나 더 힘들게 땀 흘리고 노력하는 걸 알기에 공연을 올릴 때마다 펑펑 울 만큼 감동이 크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한국에서 농인 청년이 예술가의 꿈을 이루는 건 ‘한계를 부수는 일’이라고 말한다. 수어가 공용어로 지정된 지금도 10년 전과 다를 바 없이 모든 시스템이 청인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해외의 농인 청년들은 예술가의 꿈을 꾸기가 우리나라처럼 어렵지 않다”며 “우리나라도 농인 청년들이 편견과 어려움 없이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도록 시스템이나 복지가 잘 갖춰진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핸드스피크의 목표는 농인 아티스트, 나아가 농인 리더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농인들이 리더로 자리 잡아야 다음 세대는 더 많은 기회와 편견 없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생각이다. “농인 기업에서 농인 대표가 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청인 (위주의) 기업에서도 농인 대표가 나올 수 있어야 해요. 수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농인에 좀 더 친숙한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