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시중에 풍부하게 늘린 유동성과 백신 보급 등으로 인한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특히 휘발유 가격과 농축산식품 가격 상승세 등이 겹치면서 생활물가가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물가를 잡으려면 완화적 통화정책을 버리고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소비를 비롯한 전체 경기 회복세가 아직 뚜렷하지 않아서다.
한은은 최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 확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그 가능성을 제한적으로 내다보며 완화적 통화 정책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천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지난해 2분기의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올해 2분기부터는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한은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시중에 유동성을 풍부하게 공급하면서부터 물가 상승은 예견된 일이었다. 한은으로선 앞으로 다가올 물가 상승을 관리하기 위해 유동성 흡수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상향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코로나19로 여전히 경기 회복이 더딘 상황이라 함부로 손대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그래도 물가가 이대로 오른다면 기준금리를 올릴 유인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작년보다 높아지고, 물가가 1% 정도를 넘어가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유인이 생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기 부양책, 백신 보급, 인플레이션 상승 기대 등으로 미국 국채 금리는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는 여전히 0.50%를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국내 시장금리도 상승 중이다.
이처럼 시장금리 상승으로 금융기관의 대출금리도 들썩이는 가운데, 대출금리가 1%포인트만 뛰어도 현재 대출을 보유한 전체가계가 내야 할 이자가 12조원이나 늘어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은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개인 대출(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 등)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가계대출 이자는 총 11조8000억원 증가한다. 5분위 고소득층을 빼고 저소득층과 중산층에서만 6조6000억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여기에 대출금리가 1%포인트 뛰면 코로나19로 어려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도 5조2000억원이나 커진다는 계산도 나왔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