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처리된다. 한국은 2009년부터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지만, 2019년부터는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해 참여하지 않고 ‘컨센서스(합의)’에만 참여해 찬성 입장을 알렸다. 정부는 아직 올해 입장을 결정짓지 않았지만, 같은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북한인권결의안 참여 여부는 2003년 유엔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유엔인권위원회에서 결의안이 처음 채택된 뒤 2005년 이래 논란이 계속돼왔다. 정부로서는 북한 정권이 ‘적대시 정책의 발로’라며 거부감을 보이는 인권결의안 참여를 남북대화 상황과 떼어놓고 볼 수 없어 고심이 크다.
◆2003년부터 시작돼 유럽연합이 주도
2000년대 유엔에서 북한에 대한 인권 압박이 커지면서 유엔인권위원회(2006년 유엔인권이사회로 개편·발전)는 2003년부터 3년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고, 2005년부터는 유엔총회 차원으로 격상돼 해마다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총회 결의는 유럽연합(EU)이, 인권이사회 결의는 EU와 일본이 주로 주도한다.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종합 평가를 토대로 작성된다. 주로 북한 내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표명과 즉각적인 중단 촉구, 인도적 기구의 접근 허용 등을 기본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 2004년 이후 유엔은 북한 인권 문제를 전담하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임명해왔는데, 이 특별보고관이 보고해 각국 정부대표와 토의하는 내용이 대부분 반영된다.
2013년에는 유엔인권이사회가 북한 내 인권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가 북한의 인권 피해 사례를 분석해 2014년 제출한 보고서가 현재까지도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가장 종합적인 보고서로 꼽힌다. 당시 보고서는 북한 당국에 의한 살해, 고문, 성폭력 등 인권 침해 행위들과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문제 등을 다뤘다. 해마다 벌어진 특수 상황이 결의안에 언급되지만 이 보고서에서 언급된 내용이 대부분 뼈대를 형성하고 있다.
◆국내에서 반복되는 참여 여부 논란
한국 정부는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꾸준히 유엔총회에서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합의 방식에 따를 때는 자동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힌 것으로 간주된다. 다만 공동제안국에는 2019년부터 이름을 뺐다. 당시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하지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정부 노력이나 남북관계의 특수 상황 등을 포함한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제안국 참여는 국내법에서 법안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에 비견된다. 해마다 미국, EU 등 50∼60개국이 이름을 올린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2018년 이후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탈퇴하면서 미국은 지난 3년간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북한인권결의안 참여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에 개최된 2006년 제61차 유엔총회에서 처음으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2007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개최된 제62차 유엔총회에서는 기권했다.
연세대 법학원구원 신희석 박사는 “북한인권결의안 참여 여부에 있어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누가 대통령이냐에 따라, 남북관계에 따라 입장이 변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인권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 문제에서는 유독 다른 정부에 ‘묻어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신 박사는 “2014년 COI 보고서 이후 북한 정권의 태도가 다소 바뀌었다”며 “인권결의안은 단순히 망신주기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결의안은 어떤 내용… 한국 입장은
지난 11일 토마스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각 정부들과의 상호 대화에 참석해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했고, 12일에는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북한 인권을 포함한 인권 문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원국들과 논의했다. 남은 절차는 EU가 제출한 초안에 대한 23일 회원국들의 입장 표명이다. 결의안은 다시 유엔총회에 상정된다.
정부는 입장을 검토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제46차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 입장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정부로서는 올해도 공동제안국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이나, 새로 들어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권결의안에 전향적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기조연설에서 직접 북한인권결의안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번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은 “북한에서 계속되는 제도적이며 광범위하고 중대한 인권 유린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이나 다른 지역에서 취하는 조치들이 필요와 비례 원칙을 준수하며, 비차별적이고 시간 제한을 두며, 국제법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지난해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간접 비판을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또 결의안 초안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식량, 의약품 등 인도적 물자 전달을 위한 즉각적 국경 개방을 요구했다. 한국인 피랍자 문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성소수자 박해, 여성 인권 등은 지난해부터 추가로 초안에 언급된 내용이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