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투기’ 의혹은 예고된 참사… 민·관 합동으로 전수조사해야” [세상을 보는 창]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 교수 진단

여당이 제기한 특검은 시간끌기일 뿐
투기 적발자 대부분 퇴직 얼마 안 남아
걸려도 면직처분… 솜방망이처벌 문제
내부 정보 이용도 입증하기 쉽지 않아

시한부 장관 ‘2·4 대책’ 추진에는 한계
공공주도형 서민주택정책 의지는 분명
땜질식 대책 아닌 거래 정상화 급선무
양도세 등 낮춰 시장 매매수요 늘려야
공급 외면 규제 위주 정책 탓 시장 왜곡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현 정부는 집권 이후 부동산 문제에서 규제를 늘린 것 외에는 한 것이 없다”면서 “세부담 완화 등을 통해 거래시장을 정상화하고, 재개발·재건축 등을 활성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의혹 파문은 예고된 참사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의 일성이다. LH 임직원의 광명·시흥 땅투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검찰·감사원을 배제한 정부의 보여주기식 조사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데 이어 세종시와 정치권까지 투기 의혹에 휩싸이면서 부동산 정책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공정성의 근간까지 흔들리고 있다. 논란의 시발점은 문재인정부가 “획기적 공급대책”이라며 자화자찬한 ‘2·4대책’이다. 파문의 책임이 큰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의를 표명한 후 ‘시한부 장관’으로 전락했다.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던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갈 길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파문의 원인과 해법을 묻고자 권 교수를 만났다. 대한부동산학회 이사장인 그는 “현 정부가 앞으로 20년 동안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집권 이후 허송세월만 보냈다”고 단언했다. 권 교수는 “땜질식 대책이 아니라 주택거래를 정상화시키고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8일 대면에 이어 14, 16일 두 차례 전화로 진행됐다.

 

―투기의혹이 불거진 근본 원인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1, 2기 신도시 조성 때도 투기로 구속된 사례가 많다. 정부 탓이다. 일반인은 토지가 수용되더라도 공시지가로 보상받는다고 알고 있다. 변 장관도 LH 사장 시절 같은 얘길 했다. LH 직원은 다 팔고 나갔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공시지가의 1.5∼2배 보상이 나간다. 개발이익이나 매각차익을 누릴 수 있다는 걸 국민들은 모른다. 광명·시흥뿐 아니라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남양주 왕숙 등까지 전수조사하면 (투기 사례는)수두룩할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사람 대부분은 퇴직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이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걸리더라도 내규상 면직처리되면 그뿐이다.”



―정부합동조사단이 투기의혹이 있는 7명을 추가 적발하는 데 그쳤다.

“어차피 큰 기대를 걸기 힘든 조사였다. 수사권도 없는 상황에서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조사 결과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청렴서약서를 쓰고, 비밀누설을 못하게 해도 제3자나 명의신탁으로 해놓으면 모른다. 이번에 적발된 사람 가운데 젊은 직원은 없다. 수십년간 근무한 LH 직원은 이런 정보를 꿰고 있다. 나무도 식재방법에 따라 보상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을 정도다. 뒤늦게 공직자윤리법, 자본시장법 등을 적용해 처벌한다지만 원금까지 몰수할 수 없다. 부당이득 부분도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환수할 수 있지만 내부정보를 이용했다는 걸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 특별법을 만들어도 법률불소급 원칙에 따른 위헌소지가 다분하다.”

―정부합동조사나 경찰수사를 믿을 수 있나.

“민관합동 조사단을 만들어야 한다. 민변 등이 발표한 내용을 정부와 함께 전수조사해야 한다. 가뜩이나 투기 의혹으로 정부대책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경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시흥 같은 경우 종친이나 종중땅이 많다. 기존 소유자나 원주민도 반발한다. 토지보상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거나 소송이 벌어지면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토지수용단계 전까지 인허가 절차를 밟더라도 투기가 일어났는지 면밀한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여당이 제기한 특검은 (검찰수사도 못하는 시점에서) 시간끌기일 뿐이다.”

 

경기 광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뒤늦게 LH 직원 실거주 외 토지취득금지와 농지강제처분 등 대책을 내놨다.

“순서가 바뀌었다. 지금 어떤 대책을 내놔도 백약이 무효다. 실거주 외 토지취득을 금지하고, 수사결과에 따른 농지강제처분 등은 투기 당사자와 LH만 대상으로 한 지엽적인 문제다. 국토부 등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지금 LH라는 기관의 공중분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대적인 조직개편은 불가피하다. 다만 지금은 철저한 수사가 먼저다.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각종 입법은 그 이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

―시한부 장관이 2·4대책 추진 가능하겠나.

“지금 문제가 된 게 모두 변 장관의 LH 사장 재임시절 벌어진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으로선 난감할 수 있다. 그냥 사표를 수리하면 변 장관의 책임을 면해주는 결과를 가져와 비난의 소지가 있다. 그렇다고 당장 바꾸자니 임기 1년도 안 남은 장관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다 보니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다만 공공주도형 서민주택정책의 추진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수사결과를 지켜보며 정책추진 속도를 조절하거나 공급물량을 조절할 가능성은 커 보인다.”

―LH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조기수습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정부가 끝날 때까지 파문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내놓은 주택공급은 모두 200만호다. 문제는 공급의 방향성만 제시했다. 아마 20년간 정권을 재창출할 것이라고 믿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민간주도가 아닌 토지수용방식의 공공주도형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이 LH 사장으로 간다는 얘기가 나온다. LH 사장은 국토부 장관으로 간다. 전형적인 ‘돌려막기’다. 지금 집값 상승세가 낮은 지방보다는 수도권이 문제다. 서민주택을 가장 많이 짓는 건 LH뿐이 아니다. LH는 물론 SH와 경기도시공사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필요하다.”

16일 서울 응봉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강남·다주택자=투기’로 본 정책 출발부터 잘못됐다는 건가.

“애초 정책방향이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봤다. 불로소득을 없애겠다고 1가구 2주택자를 ‘악’으로 규정했다. ‘두 집 살림’ 안 하면 그냥 투기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로 무주택자까지 피해를 보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LH사태만 봐도 지금 주택투기보다 토지투기 문제가 더 심각하다. 애꿎은 국민을 투기꾼으로 몰더니 결국 정부가 투기꾼임을 자인한 셈이다.”

―LH파문이 없었더라면 집값 연착륙은 가능한가.

“2018년 기준 서울의 자가주택 점유율은 50%가 안 된다. 나머지는 1가구 2주택 등 다주택자다. 정부가 아무리 애를 써도 정책이 시장을 이길 수 없다. 누차 얘기하지만 주택시장을 안정화시키는 건 거래를 정상화시키는 것뿐이다. 양도세 등을 낮춰 숨통을 트여주고,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넘어가게 해야 집값과 전월세시장이 안정된다. 3년 넘게 시장을 이기겠다고 공언하더니 이제서야 민간이 아닌 정부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재난지원금 등 세금을 마구 쓰면서 돈이 많이 풀렸다. 부동산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주택공급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말로만 주택 공급을 외쳐도 당장 입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00만, 200만호는 1∼2년 내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주택시장은 입주물량이 있어야 한다. 서울·수도권에 84만호가 동시에 쏟아지면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미분양사태가 온다. 시장 공급도 탄력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규제에만 집착하다 보니 공급은 외면했다. 뒤늦게 정부가 제시한 공급도 민간주도가 아닌 공공개발이다. 향후 재집권을 노린 중장기 계획이라는 의심이 간다. 역세권 개발 시 용적률을 올려주면서 개발이익환수다 뭐다 해서 정부가 모두 가져간다. 민간이 선뜻 나설 리 만무하다.”

―임대주택 형태의 공공주도 공급 방향은 맞는 건가.

“북유럽 쪽에 많은 임대주택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 부동산이 자산의 80%를 넘는다. 주택은 소유 개념이다. 임대주택문화가 정착되려면 주택공급이 충분해야 한다. 시장을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다. 그러려면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형태의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서울의 수요를 분산시키려면 세금을 낮추고 수도권 지역에 교통 등 접근성을 높이면 된다. 문재인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억제하는 ‘역수요공급법칙’에 집착했다. 수요가 있어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수요가 분산된 줄 알고 착각한 것이다. 공급을 내팽개치고 규제위주 정책을 쓰면서 부작용과 시장 왜곡현상만 심각해졌다.”

김기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