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줏집 불나자 함께 끈 노래방 사장님… “다 같이 살아야죠” [밀착취재]

위층 주방 화재 경보 본 ‘동업’ 형제
소화기 들고 달려가 10여분간 진화
초동조치 덕분 소방대 금방 불 꺼

“코로나로 자영업자 연대감 생겨
가게 불타면 끝 절박감에 행동”
화재가 발생한 맥줏집 주방 내부. 구현모 기자

“불길을 빨리 잡지 못했으면 가게가 다 탔을 겁니다. 아래층 사장님들이 아니었으면 전부 잃을 뻔했어요.”

 

16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맥줏집 사장 A씨는 며칠 전 화재 상황을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11일 오후 7시쯤 건물 3층에 있는 A씨의 가게 주방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어른 키보다 커졌다. A씨는 “너무 놀라서 ‘불이야’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때 한 남성이 소화기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2층에서 친동생과 함께 노래방을 운영하는 정모(35)씨였다. 불이 커지면서 건물에 설치된 화재경보기가 울렸는데, ‘3층’에서 불이 났다는 표시를 본 정씨가 대피하지 않고 바로 달려온 것이다. 정씨 동생도 1층 식당으로 내려가 119 신고를 부탁한 뒤 다른 소화기를 들고 올라왔다.

 

정씨 형제는 10여분 동안 소화기 7개를 사용해 필사적으로 불길을 막았다. 연기를 마셔 ‘더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황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마침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마저 진압해 불은 20분 만에 꺼졌다. 주방 밖은 목조구조라 하마터면 큰 불이 날 수 있었다. 서울 강남소방서 관계자는 “출동했을 당시 큰불은 이미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며 “정씨 형제가 초동조치를 한 덕분에 금방 불을 끌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위험한 상황에서 대피하지 않고 화재 진압에 나선 이유를 묻자 정씨는 “모두가 살기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불을 껐다”고 답했다. ‘가게가 불타면 모든 게 끝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려고 매일 가게를 소독하는 등 애쓰고 있지만 손님이 줄어 너무 힘들었다. 작년에도 1억원 가까이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이어 “불이 커져서 폭발할까 봐 무섭기도 했지만 건물이 타면 우리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해 본능적으로 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화재를 진압한 정씨 형제가 썼던 마스크가 검게 그을려 있다. 구현모 기자

정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끼리 일종의 ‘연대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맥줏집 사장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며 “위험한 상황에서 누구도 밖에 나가지 못한 것은 마지막 남은 재산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이름과 얼굴 공개를 꺼린 형제는 “하루빨리 피해가 회복돼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종민·구현모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