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부검의 “지금까지 봤던 아동학대 사례 중 제일 심한 손상… 우발적 사고 가능성 낮아”

2002년부터 국과수에서 3800여건 담당한 부검의, 정인이 양부모 8차 공판에 증인 출석 / “췌장 절단에 장간막도 몇 군데 찢어져… 너무 손상 많아 사고로는 다 생길 수 없는 손상”

 

생후 16개월에 양부모의 모진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8차 공판이 열린 가운데, 숨진 정인 양을 부검했던 부검의가 증인으로 출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껏 봐온 아동학대 피해자 중 가장 심한 손상이 보였다며 부검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이상주)는 지난 17일 살인 및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를 받는 정인 양의 양모 장모씨,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등) 혐의의 양부 안모씨의 8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국과수 부검의 김모씨는 정인 양의 시신 상태에 대해 “지금까지 제가 봤던 아동학대 피해자 중 제일 심한 손상을 보였다. 함께 한 다른 의사 3명도 다 같은(의견이었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얼굴뿐만 아니라 몸통과 팔, 다리 곳곳에 맨눈으로 보기에도 심한 상처가 많았다”면서 “(손상 정도가 너무 심해) 학대냐 아니냐를 판단하기 위해 따로 부검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정인 양 양부모의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부검을 통한 정인 양의 사인은 ‘강한 외력에 위한 췌장 절단’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아주 높은 곳에서 추락했을 때 췌장이 절단될 수 있다면서 우발적인 사고로 그런 상태가 되기는 어렵다고 확신했다.

 

그는 특히 “165㎝ 성인의 눈높이에서 체중 9㎏의 16개월 아이를 떨어뜨려서 의자에 부딪히는 방식으로 췌장 절단이 가능하느냐”는 검찰 질문에 “그러기는 어렵다”라고 답했다.

 

그는 관련 논문 등을 인용, 통상 집에서 그런 치명적인 복부손상이 생기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씨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는 췌장이 절단될 정도의 복부 손상이 생기기는 어렵다”면서 “이번 사건처럼 장간막까지 크게 찢어지는 상처가 발생하려면 사고가 아닌 폭행이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그는 척추를 보는 방향에서 직각 방향으로 외력이 작용해야 정인이와 같은 신체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주장장했다.

 

김씨는 정인 양의 사망 원인 관련 “비우발적 손상일 가능성을 시사한다”면서 “너무 손상이 많기 때문에 사고로는 다 생길 수 없는 손상”이라고 말했다.

 

양모 장씨 측은 그동안 정인 양을 실수로 떨어뜨렸다는 주장을 반복해왔는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김씨는 “복부에 2회 이상의 강한 외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동학대를 굉장히 시사하는 소견”이라고 했다.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3차 공판이 열린 지난 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 정인이 추모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장씨 측 변호인이 ‘CRP(심폐소생술)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논문이 있다’는 취지의 질문을 하자, 김씨는 “지금까지 보고된 내용이 없다. 소아에서는 갈비뼈 골절이 잘 생기지 않는다. CPR은 약하게 하므로 손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김씨는 2002년부터 국과수에서 부검을 맡았고, 약 3800건을 부검해왔다.

 

한편, 검찰은 지난 1월13일 첫 공판에서 장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는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하면서 장씨에 대한 통합심리분석결과보고서(대검 법과학분석과) 등을 종합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장씨는 ‘욕구충족을 하는 과정에서 규칙이나 규범을 좀 무시하고, 내재하고 있는 공격성이 쾌 큰 편이고, 피해자를 자기에게 저항할 수 없는 대상으로 생각해 본인이 가진 스트레스나 부정적 정서를 그대로 표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돼 있다.

 

또한 장씨에 대한 사이코패스 검사(PCLR)를 실시한 결과, 진단 기준점인 25점에 근접했다고 적시됐다.

 

장씨는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입양아 정인 양을 상습 폭행·학대하고 같은 해 10월13일 정인 양의 등에 강한 충격을 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남편 안씨도 아내의 지속적인 학대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