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범죄 판단 이르다"… 애틀랜타 총격 용의자, 살인혐의 기소논란

한인사회 “‘성중독’은 변명...증오범죄 등 전면적 수사” 촉구
지난 16일(현지시간) 연쇄 총격사건이 발생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피드먼트로의 '아로마세러피 스파'에 경찰들이 출동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애틀랜타 AFP=연합뉴스

미국 애틀랜타 경찰이 마사지숍·스파 총격사건의 용의자를 서둘러 살인 및 중상해 혐의로 기소하고 “증오범죄로 판단하기 이르다”고 발표하자 한인사회가 들끓고 있다. 한국계 미국 연방 하원의원들도 17일(현지시간) 한인 4명 등 8명이 희생된 이번 사건과 관련한 경찰의 초동 수사 결과를 비판하고,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다룰 것을 촉구했다.

 

◆현지경찰 “증오범죄 판단 일러”...살인 등으로 기소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체로키카운티 수사 당국은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에 대해 4건의 살인 및 1건의 가중폭행 혐의를 적용해 전날 기소했다고 이날 밝혔다.

 

전날 애틀랜타 근교 체로키카운티의 마사지숍 한 곳과 애틀랜타 시내의 스파 두 곳에서 연쇄 총격이 발생해 8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재 기소된 사안은 체로키 카운티 마사지숍에서 발생한 총격 범행과 관련한 것으로, 이 곳에서 4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체로키 카운티 경찰은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용의자를 재판에 넘겼다고 설명했다. 용의자는 애틀랜타 시내의 스파 두 곳에서도 연쇄 총격으로 한인 여성 4명을 숨지게 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일대 스파 두 곳과 마사지숍에서 발생한 연쇄 총격 사건의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 애틀랜타 AFP=연합뉴스

◆“아시아인 죽이겠다” 목격자 증언에도 성중독 가능성 언급...한인사회 분노

 

현지 경찰이 용의자가 성 중독에 빠졌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증오범죄인지 판단하기에 이르다고 밝히자 한인사회는 물론 한국계 의원들도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의회 발언을 통해 “어제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총격 사건으로 8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6명은 아시아 여성”이라며 “이것은 총기 폭력이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인종적 동기에 의한 아시아·태평양계(AAPI)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 사건의 동기를 경제적 불안이나 성 중독으로 변명하거나 다시 이름을 붙이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스트리클런드 의원은 “저는 흑인이자 한국계로서 이런 식으로 (사건의 본질이) 지워지거나 무시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다”며 “유색 인종과 여성에 대한 폭력 행위가 발생했을 때 증오 행위가 아닌 동기로 규정하는게 어떤지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말이 중요하고, 리더십이 중요하다. 우리는 공포와 편협함에 뿌리를 둔 행동과 언어를 크게 비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트리클런드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서도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는 가운데 전면적인 수사와 정의를 촉구한다”며 “인종적 동기에 의한 폭력 행위는 정확히 규명돼야 한다. 총기 폭력에 정말 소름이 끼치며 트라우마를 겪는 희생자와 유족을 보며 비통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 당시 용의자가 ‘모든 아시아인을 죽이겠다’고 말했다는 목격자 진술을 보도한 현지 언론매체를 인용 “조지아의 총격 사건은 증오범죄였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미셸 박 스틸,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영 김, 앤디 김. 연합뉴스

태미 김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의원도 트위터에서 “분명히 하자. 용의자는 아시아 여성들에게 집착해 그들을 쐈다”며 “이것은 증오범죄로 취급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건을 (증오범죄가 아닌) 다른 것으로 부를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고 촉구했다.

 

미셸 박 스틸 공화당 하원의원은 “이번 사건은 비극적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 범죄는 중단돼야 한다”며 “희생자들과 그 가족, 아시아·태평양계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아시아계 인권단체인 ‘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Stop AAPI Hate)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개월간 미 전역에서 2800여건의 증오범죄가 발생했고, 이중 여성 피해자가 68%에 달했다.

 

앤디 김 민주당 하원의원도 “체계적인 인종차별주의는 깊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희생자 가운데 한명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 김 공화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에 비통하다.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 기도한다”며 “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증오와 공격 행위를 목도하고 있는 이때 저는 아시아·태평양계 공동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