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북극권 핀란드의 라플란드. 4월이 되면 산정에서 내려온 순록떼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끝없이 펼쳐진 순백의 눈밭을 가로질러 목초지를 찾아가는 이들의 본능이 장관을 연출한다.
방금 세상에 나온 아기 순록 ‘아일로’는 5분 만에 혼자 일어서서 10분 만에 걷고 15분 만에 달리며 수영해야 한다. 흰색 담비와 청설모가 아일로의 탄생을 반기듯 재롱을 부린다.
멀리 일행이 보이자 아일로와 엄마 순록이 힘껏 뛰기 시작한다. 관객들도 덩달아 달리게 된다.
순록은 무리 지어 끊임없이 걷는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매일 아침잠을 깨면 또다시 다 함께 이동한다. 늘 같은 길을 걷는다. ‘순례자’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어떡하나. 이곳의 여름은 너무 짧다. 모기떼도 극성이다. 푸른 풀을 뜯기도 잠시, 순록은 물속에 뛰어들어 모기떼를 피한다. 다시 산 위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산정을 향해 오르다 보면 바람이 세지고 기온이 떨어져 모기떼가 따라오지 못한다.
지구상에 2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북극여우들이 이 시기에 짝짓기를 하고, 뒤이어 순록 수컷들은 3주 동안 짝짓기를 위한 혈투를 벌인다. 싸우다 뿔이 엉키면 두 마리 모두 쓰러진 채 그대로 죽어간다. 승자 수컷 한 마리당 대개 15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
늑대들이 바빠진다. 사냥에 나선 늑대들은 먹잇감을 정하고 작전회의를 거쳐 각자 다른 방향에서 공격한다. 흩어지는 순록 무리, 아일로도 길을 잃었다. ‘숲의 유령’ 울버린이 매복해 있는가 하면 매도 긴 날개를 펴고 올라 어린 순록들을 뒤쫓는다.
며칠 사이로 금방 겨울이 닥친다. 서둘러 산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산꼭대기에는 눈이 깊게 쌓이지 않고, 겨우내 버틸 수 있는 식량, 이끼가 있다. 폭설로 길이 막히기 전에 빨리 올라가야 한다. 오래전 조상들처럼, 오로라를 보면서 방향을 잡아간다.
순록떼의 이동경로를 내려다본 까마귀들이 신선한 고기를 원하는 늑대들의 길잡이로 나선다. 포기를 모르는 늑대들은 영하 40도의 날씨에도 8부나 9부 능선까지 따라 오른다.
‘카모스(KAAMOS)’란 11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라플란드에 해가 뜨지 않는 기간을 부르는 핀란드 말이다. 낮시간에도 희미한 빛이 하얀 눈과 어우러져 오히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비로운 빛무리로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희미한 빛에 의한 명암대비가 더 선명해지면서 보이는 것들의 경계선이 더욱 뚜렷해진다. 카모스 속 순록 모자의 모습이 가족애의 상징처럼 보인다.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고 1년을 살아 낸 아일로는 이제 엄마랑 헤어져 어른으로 살아가야 한다. 무겁도록 눈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마치 석상처럼 보이는 저녁, 아일로가 담담하게 중얼거린다. “곧 해가 다시 뜰 거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해 ···.”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