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엽수에 연둣빛 새잎이 돋으니, 조도(照度)가 몇 도는 더 높아진 듯 세상이 환하다. 나무는 겨울에 죽고 봄에 다시 살아난다. 나무를 살리는 것은 땅과 물과 태양이다. 나무가 없는 삭막한 지구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지구가 이토록 생명 가득 찬 행성이 되는 데 나무가 기여한 바가 크다. 산책을 하다가 매화나무 묵은 가지에 만개한 꽃이 공중에 퍼뜨리는 방향에 취해 한참을 서 있었다. 매화가 피면 매화가 피었다고, 목련이 피면 목련이 피었다고,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경기도 남단의 소도시로 이사했을 때 나는 나무시장에서 모란과 작약을 구해 마당에 심었다. 봄마다 모란과 작약이 피우는 그 탐스러운 꽃을 봄의 보람과 기쁨으로 여기며 살았다. 마을 어귀에는 수령 400,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는데, 우람한 느티나무가 하늘로 뻗은 가지마다 연두색 잎을 피우는 계절에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주변에 생기를 불어넣는 느티나무의 늠름함에 기대어 시골살림의 잦은 시름을 잊었더랬다.
장석주 시인
모란과 작약의 꽃망울 터질 무렵엔 배낭을 메고 해발 400, 500미터의 능선을 무작정 걸었다. 씻은 오이 한 개와 생수 한 병이 든 배낭을 메고 산 능선을 넘고 골짜기를 건넜다. 신록이 우거진 산은 상록활엽수 말고도 서어나무, 팥배나무, 줄참나무, 산딸나무, 단풍나무, 산벚나무, 싸리나무, 밤나무, 아카시나무, 때죽나무, 층층나무, 이팝나무, 칡덩굴, 으름덩굴 들이 어우러진 채로 한반도 중부의 풍성한 수목 생태계를 이룬다. 산행을 하다가 땀방울을 식히며 이마에 닿을 듯한 맞은편 산림이 펼친 녹색의 향연에 넋을 잃곤 했다. 숲은 녹색 계열의 여러 색으로 다채롭다. 바람이 불면 숲은 군무(群舞)를 추듯이 한 덩어리로 출렁이는데, 그 물결치는 녹색은 한 색이 아니었다.
나무는 자연의 리듬에 따르는 존재이고,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강인하게 맞서며 제 생존을 잇는 옹골찬 생명체다. 나무는 자연이라는 생명공동체에서 중요한 연결망이다. 인간과 대지, 인간과 동물들은 나무를 매개로 연결된다. 인간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그 연결망의 작은 일부에 속한다. 나무는 지구 시간의 기록자이며, 지하 세계와 대지와 천상계를 잇는 경이로운 현존이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다. 고대 신화에서 나무는 지하와 대지와 하늘을 잇고 떠받드는 우주목이다. 대지에 척추를 수직으로 곧추 세우는 나무는 세계의 중심을 떠받드는 기둥이다. 나무는 뿌리를 지하에 박고, 가지들은 천상을 향해 뻗는데, 뿌리가 찾은 물은 수액이 되고, 태양은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사람의 혈관에 혈액이 돌 듯 나무의 수관에는 수액이 흐른다. 살구나무는 살구나무끼리, 복숭아나무는 복숭아나무끼리 인간 가청주파수 아래의 저주파로 속살거린다. 나무의 삶은 사람이나 동물에 견줘 매우 길다. 한자리에 붙박이로 사는 나무의 삶은 내면적이고 나무가 도달한 장엄함은 곧 침묵의 장엄함이다. 나무와 인간은 생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다. 활엽의 나무는 어느 시점에 가지에 달린 잎사귀를 떨구고 겨울을 맞는지를 안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이란 학자는 “식물의 기억은 세대를 이어 계승”되고, “뿌리와 잔가지는 빛, 중력, 열, 무기물”을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말한다. 나무의 뛰어난 기억력과 영리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류는 생물학적 생존을 잇는 데 나무에게 크게 빚졌다. 사람은 나무에게서 생존에 양식과 은신처를 구하고, 불을 피워 추위를 피하고, 집을 짓는 재료를 구했을 뿐 아니라 나무에게 심미적 기쁨을 구하고 위로를 받았다. 거친 토양과 다양한 기후 속에서 인고하며 자라는 나무가 없었다면 인류의 번영도 불가능했을 테다. 봄마다 저 오래된 나무들에 새로 돋는 연둣빛 잎과 화사한 꽃을 보며 사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