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줄잡아 1만여명의 인사권을 갖는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많은 우리나라는 당선에 기여한 사람이나 낙선 국회의원, 청와대 비서관 등 정치권 인사들을 배려할 자리가 많다. 공공기관장과 상임감사, 사외이사 자리는 물론이고, 전문성과 능력이 필수적인 국책연구기관장에도 정권과의 관계에 따른 낙하산 인사가 비일비재한 것은 그 때문이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 입장을 모르지는 않지만 임기만료를 불과 1년 앞둔 현시점에서 3년 임기의 공공기관장을 새로 임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향후 대통령 권력이 교체되면 공공기관이나 공영방송, 국책연구기관장 자리를 둘러싼 심각한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해 340여개 공공기관 중 약 절반인 170여개 공공기관장 자리의 교체수요가 발생한다. 과거에는 임기만료가 가까운 시점에는 기존의 기관장을 연임시키거나(1년) 내부 인사로 기관장 권한을 대행시킴으로써 다음 정권을 배려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 관행이 깨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남짓 남긴 시점에 당시 KBS의 정연주 사장을 임명하면서부터다. 정 사장은 이명박정부에서 사퇴 압박을 받았고, 이를 거부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해임되었다. 정 사장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가 부당하게 이루어졌다고 소송을 제기했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 승소함으로써 개인의 명예는 회복했지만 KBS를 둘러싼 갈등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었다.
이후 공공기관장, 국책연구기관장, 공영방송사장이나 상임감사, 사외이사 자리는 항상 정권교체와 함께 전 정권의 ‘알박기’가 되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문재인정부도 임기가 남아 있던 KBS 이사진을 무리하게 교체했다가 이에 불복한 강규형 명지대 교수가 제기한 소송에서 결국 패소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것도 임기가 보장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을 무리하게 교체하려다가 발생한 일이다. 일부 공공기관장의 경우, 재판에서 승소한 전임 기관장의 임기가 아직 남아 한 기관에 두 명의 기관장이 일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