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경제 전반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과 ‘빚투’(빚 내 투자하기) 열풍에 힘입은 ‘유동성 홍수’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국내 자산시장의 열기가 최근 들어 시들해지고 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자 글로벌 시장 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자본 유출을 우려한 일부 신흥국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국내 금융시장도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유동성 파티’ 막 내리나
풍부한 유동성으로 호황을 누리던 국내 증시는 미국발 채권금리 인상 리스크로 식기 시작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2023년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강하게 재확인했지만, 시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이어가고 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FOMC 다음날인 18일 약 14개월 만에 1.7%까지 상승했다가, 22일에는 1.6%대 후반으로 내려왔다. 연준이 경기회복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용인할 것으로 보여 시장금리 불안은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증시 역시 미국 금리 리스크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달러화 강세로 자본유출을 우려한 일부 신흥국이 금리를 올리자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국내 증시보다 더 나은 투자처를 찾아 떠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6거래일 중 11거래일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의 달러 유출 리스크가 커지면 우리나라도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어 국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당장 금리 인상 없겠지만, 대비는 해야”
정부는 국내외 국채시장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에 나섰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최근 단기물 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10년물·30년물 금리가 한때 역전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라며 “국내외 국채시장 동향에 각별히 유의하며 모니터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거래대금이 감소한 현상이 시장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은 기우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동성이 감소했다기보다는 거래대금이 줄어든 것”이라며 “증시 변동성이 크면 거래대금이 늘어나지만, 지금과 같이 증시가 안정적일 땐 거래대금이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연말·연초 국내 증시와 비교하면 뭔가 실망스럽고 에너지가 가라앉은 느낌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 거래대금 감소가 시장에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증시가 호황이니까 투자한다는 단순 논리에서 벗어나서 기업의 가치에 투자하는 본질적인 논리로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당장 금리가 인상되지는 않겠지만 대비할 필요성은 있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여전히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책금리는 당분간 올리지 않겠지만 미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물가 오름세가 보이는 등 시장금리 상승 가능성은 커진다고 봐야 한다”며 “당장 위기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금리상승 위험에 대비할 필요성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개인 투자자는 장기적인 투자 관점에서 재원 조달하고 투자 종목을 선택한 경우에는 타격이 크지 않겠지만, 부채로 투자한 경우에는 상당히 유의해야 할 시점이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범수·김희원 기자, 세종=우상규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