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사는 한모(29)씨는 최근 3년3개월간 다닌 회사를 과감하게 그만뒀다. 남들이 부러워하던 금융회사였지만 한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성공한 재테크로 확 불어난 재산 덕분에 부담 없이 퇴사할 수 있었다. 한씨는 ‘하이 리스크-로 리턴’이라는 소신 아래 그동안 월급 대부분을 예·적금보다는 주식과 암호화폐 등 위험성 자산에 투자했다. 한씨는 “지난해 1월 보유주식과 암호화폐 계좌잔고가 1억3000만원 정도였는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21억원으로 크게 불어났다”면서 “이제는 지인들과 투자회사를 차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디바이드’(Corona Divide).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다. 코로나19는 사회 전반을 변화시켰지만, 그 변화 양상을 체감하는 정도는 계층에 따라 다르다.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고용 형태가 불안한 비정규직들에겐 코로나19의 피해가 더 치명적이다. 반면 기존에 일정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이들은 소득이나 생활 수준이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더 불어나는 기회가 됐다.
빈부격차는 통계 지표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순자산 지니계수는 3월 말 기준 0.602이었다. 순자산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개념으로, 지니계수는 ‘1’에 가까워질수록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간 격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3년 0.605를 기록한 이후 2017년까지 떨어지던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8년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코로나19가 발발한 지난해 다시 0.6을 넘어섰다.
상위 20%(5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을 하위 20%(1분위)의 평균 순자산으로 나눈 값인 ‘순자산 5분위 배율’도 2017년 99.65배에서 지난해 166.64배로 크게 뛰었다. 지난해 3월 5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11억2481만원으로 1분위 가구(675만원)보다 11억1000만원 이상 많았다. 이러한 통계지표는 올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 간 격차도 커졌다
코로나19에 따라 업종 간 경기침체 편차도 다르게 나타났다. 정보기술(IT) 업종 등 언택트 관련 산업은 성장가도를 달리지만 중소상공인 비중이 높은 음식숙박업과 여객운송업 등은 심각한 침체를 겪고 있다.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산업별 부가가치 성장률은 문화서비스·운수업에서 전년 동기 대비 20% 줄어든 반면 금융보험업과 정보기술 등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제조업은 전체 성장률이 5%가량 감소했다. 그러나 제조업 세부업종별로 보면 언택트 산업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반도체 부문의 생산은 23%가량 급증했다.
국내 IT 기업들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가 각광받으면서 더욱 위상이 높아졌다.
카카오와 엔씨소프트, 네이버는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 임직원 평균 연봉 ‘1억원 클럽’에 처음 합류했다. 카카오의 직원 평균 연봉은 1억800만원으로 전년 대비 35%가량 급증했다. 네이버와 엔씨소프트의 평균 연봉은 각각 1억248만원과 1억550만원으로 각각 20%, 22% 상승했다.
반면 비대면 서비스 도입이 쉽지 않은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선임연구위원은 “감염병 위협의 영향이 가장 큰 대면형 서비스 업종은 영세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아 이번 위기에서 영세자영업 종사자와 같은 상대적 취약계층이 큰 타격을 받는다”며 “부문 간 침체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 대응을 할 때 전방위적 보편 지원보다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큰 취약 계층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침체 속 호황을 누리는 업체가 있다는 것은 신규 고용의 잠재 수요가 있다는 의미인 만큼 고용유지 지원금과 같은 해고억제 정책뿐만 아니라 고용확대를 유인하는 채용촉진 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 격차 부추기는 비대면 교육
코로나19 여파로 교육의 중심추가 ‘비대면’으로 이동하면서 교육격차도 더 커지고 있다. 공교육이 원격수업 위주로 진행되며 가정환경이 학습 수준에 미치는 영향은 이전보다 커졌다. 학생들이 교실이라는 동일한 환경에서 수업을 듣던 때와 달리 각자 집에서 온라인 학습을 하며 디지털 설비나 돌봄 인력 유무 등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탓이다.
실제로 비싼 주거지역에 거주하는 경제력이 좋은 집안 학생일수록 학습 시간이 길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1월 학술지 ‘공간과 사회’에 게재된 ‘코로나19 이후 거주환경의 차이가 초등학생의 학습, 게임, 놀이 시간에 미치는 영향 분석’ 논문에 따르면 주택 가격이 높은 지역 학생일수록 원격수업에 들이는 시간이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8월 경기 부천 지역 초등학교 3곳의 학생 4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변 주택 시세가 평당 1410만원인 A초등학교 학생은 하루 평균 155분을 원격수업에 할애했지만, 주변 주택 시세가 989만원인 B초등학교는 127분, 주변 주택 시세가 평당 710만원인 C초등학교는 83분을 원격수업에 투자했다. 반대로 하루 중 게임을 하는 데 쓰는 시간은 주변 주택 시세가 높은 지역 학생일수록 적었다.
사교육비 지출 실태 조사에서도 교육격차 심화가 드러난다. 지난 9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초·중·고교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교육비 총액은 9조3000억원으로 전년도 10조5000억원보다 11.8% 줄었고 1인당 평균 사교육비 역시 32만2000원에서 28만9000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로 범위를 좁힐 경우 월평균 사교육비는 43만4000원으로 전년도(43만3000원) 대비 0.3% 늘었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등교수업이 줄면 가용 시간이 늘어나 경제력이 있는 집안 학생들은 더 많은 사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반해 저소득층 학생은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비대면 수업에만 의존하게 되니 학습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최소한 디지털 환경 격차라도 줄여주기 위해 공공도서관 등에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정훈·이우중·남혜정·박지원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