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 선정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주민 동의율(공공재개발 공모신청) 1위인 성북1구역 곳곳에는 ‘후보지 확정 환영’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주민들의 속내는 복잡해 보였다. 한쪽에선 드디어 ‘숙원사업’이 이뤄진다며 기대를 보였지만, 다른 한편에선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겠다며 공공재개발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성북1구역은 보통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인근에서부터 홍익대 부속 중·고등학교와 동구여중·동구마케팅고등학교 사이를 지칭한다. 역과 가까운 곳은 평지에 대로에서 가까워 상업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지만, 조금만 위로 올라가도 구불구불한 급경사가 나타나며 낡은 빌라와 쪽방, 신축 건물들이 부조화 속에 빽빽하게 혼재돼 있다.
이곳은 2001년부터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반대하는 주민이 많고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무산됐다. 그 사이 지역은 제대로 개발되지 못하고, 재개발을 노리고 뛰어든 투자 세력만 차곡차곡 쌓였다는 게 원주민들의 설명이다.
역 근처에서 이발소를 운영 중인 61년차 이발사 김석근(80)씨는 “요 몇년간 신축 건물들이 엄청 늘었다. 이 앞집도 작년에 건축비만 5억원 들여 지었다더라”면서 “아파트 (입주권) 하나 준다고 이걸 부술까. 어림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신축 상가 중 임대료 수입이 쏠쏠한 곳들도 공공재개발에 반대한다. 최근엔 청년 사장이 운영하는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며 동네에 활기가 돌고 있다. 이날 한 매장 앞에는 오후 2시에도 수십 명이 빵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신축 건물주 사이에서도 재개발 지지파와 반대파가 나뉜다. 김씨는 “재개발 보고 들어온 외지인 중 자기 돈으로 산 사람들은 괜찮지만 돈 빌려 산 사람들은 여태껏 개발이 안 됐으니 지금 다 망할 판국이다. 그런 분들이 강하게 어필을 해 주민 동의율이 높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성북1구역은 공모신청서 접수 당시 주민 동의율 76.45%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김씨는 “성북동이 빈부 격차가 무척 심하다. 판잣집도 있고, 재벌 회장이 520평 대지에 지은 집도 있다”며 “그런 쪽은 구역 지정에서 빠졌단 얘기도 있고 아직 뒤숭숭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의 말처럼 홍익대 부속고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도 금세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진다. 도로 정비가 안 돼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이 가지를 치며 개미집처럼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구역 중턱까지만 올랐는데도 낡은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아랫집 앞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눈앞에는 서울 시내가 펼쳐졌다.
근처에서 주차 정리를 하던 주민 최민옥(58)씨는 “여기서 15∼20년씩 산 원주민이 많은 편인데, 세를 준 집 주인들은 찬성하지만 실거주하는 집 주인들은 반대한다”며 “보상금 받은 돈으로 갈 곳이 없어서”라고 설명했다.
그간 수없이 되풀이된 재개발 ‘희망 고문’에 최근 LH 투기 사태까지 터지면서 공공재개발에 대한 찬반을 떠나 주민들의 신뢰는 바닥을 쳤다고 한다. 재개발 매물 전문 B부동산 S소장은 “투자 목적의 전세 낀 빌라가 재작년에는 2억∼3억원이면 매수 가능했다”며 “지금은 24평 빌라가 7억원 후반대다. 평균 1억원 이상 올랐는데 몇 달에 하나 계약될 정도로 매물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재개발 분담금을 낼 여유가 없는 원주민들은 ‘왜 내 건물 주고 분담금까지 내야 하느냐’며 반기를 들 거다. LH 사태 때문에 불신이 생겨 마음 바뀐 분들도 있다”며 “구역 지정에는 주민 67% 이상의 동의가 다시 필요하다. 한남1구역도 주민 반발 때문에 (후보 지정에서) 결국 빠졌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1종·2종 혼재돼 있는 주거지역 용적률을 올려주는 등 정부가 주민들 마음을 돌려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