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착륙 국제 관광비행’에 관한 기사를 처음 접한 올 초만 해도 큰 관심이 없었다. 늦어도 여름부터는 예전처럼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2월이 지나가면서부터 그 기대는 점점 멀어져 갔고, 외국 영공을 통과해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무착륙 관광비행 상품의 탑승률이 삼월 중순부터는 80퍼센트 이상이라고 하니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여행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도착지에 다다르기 전까지 통신망이 두절된 제한적 공간에서 기내용 와인을 마시면서 영화를 보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시각각 변화하는 고도와 시간 속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길 수밖에 없는, 기내에서의 그 남다른 시간을 여행의 애피타이저처럼 즐겼다는 게 새삼 떠올랐으니까.
여행을 갈 수 없는 시절이라고, 여행을 가지 못해서 답답하다고 더는 불평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는 분에게 부탁해 숙소를 구하고 작은 트렁크까지 꺼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삼박 사일의 짐과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 한 권만 챙겨 넣었다. 부모에게 배워서인지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 혼자 안방에 들어가서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누군가에게 소리 내서 인사하곤 하는데, 그날 나는 그 의식도 빼먹지 않았다. 그러곤 택시를 타고 이번 여행지로 향했다. 아는 사람 중에 매일 집 근처 산에 오르는 것으로, 이웃에 사는 부모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여행을 대신한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분들도 있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 자신만의 코로나 시대 여행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다. 요금은 5500원.
장소와 사람들에 관한 거대한 산문집처럼 느껴지는 ‘방랑자들’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여행자들이 만나면 서로 이 “세 가지 질문”을 주고받는다고. 첫 번째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두 번째는 어느 곳에서 오는 길인가? 그리고 마지막은 어디로 갈 예정인가? 나는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많이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 상도동 여행에서는 그랬다. 첫날, 거기까지 읽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직진한다면 한강대교로 이어지는 터널의 둥근 양쪽 입구로 들어가고 나오는 자동차들, 어딘가를 향해 구부러진 인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떠나온 곳은 어디인가, 이제 어디로 갈 예정인가, 라고. 그러자 정말 집을 떠나 낯선 곳에 와 있으며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