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결 없는 사생활과 성실성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은 방송 연예인 박수홍씨가 그간 방송 활동으로 벌어들인 전 재산을 횡령당했다. 횡령 당사자가 친형이라서 충격을 더했다. 그는 데뷔 초부터 친형에게 매니저 업무를 맡겨 출연료 등 수입의 전부를 맡겨 관리했는데 형과 형수가 그 돈을 횡령해 잠적했다. “30년의 세월을 보낸 어느 날 제 노력으로 일궈온 많은 것이 제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라고 그는 어렵게 털어놓았다. 그는 사람이 이래서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는 망연자실한 채로 잠 못 자고 먹지도 못 하는 사이에 체중이 15킬로그램이나 빠졌다고 한다.
이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 관계에서 벌어진 사태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의 심리를 지배하면서 가해자에게 점차 의존적이 되도록 길들이는 행위다. 박수홍씨는 30여 년 동안 심리 지배를 당하는 상태에서 형에게 의존하고 전 재산의 관리를 맡겼다. 그의 형과 형수는 경차를 타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듯 연기하며 뒤로는 그의 수입 전부를 곶감 빼먹듯이 빼돌려 제 사유재산 불리기에 몰두했다. 이로써 그는 100억원대에 이르는 큰 자산을 잃고, 가족 간의 유대와 행복에 대한 기대마저 잃었다. 가족이 자아의 기원이자 그 바탕이라면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제 윤리적 자산의 바탕과 기원을 부정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물론 박수홍씨는 잘못이 없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가족을 믿은 점이다. 그가 가족 간 횡령 사건으로 큰 혼란과 회의 속에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고,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은 점에 대해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새삼 던지게 되었다. 부부와 자녀들로 이루어진 가족은 사회의 최소 단위다. 사람은 가족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유대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가족은 어린아이들이 감정과 욕구를 터뜨리고 누르면서 자아 성장을 겪는 사적 영역이고, 그들의 자아의 성장 스토리가 펼쳐지는 무대다. 감정 사회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자인 에바 일루즈는 감정을 “행동에 특별한 ‘기분’ 또는 ‘색조’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자아의 영역에 속하면서 행동의 내적 에너지인 감정은 사회생활에서 항상 중요한 기제로 작동한다. 그런데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인지, 정서, 판단, 욕구, 육체 등등이 얽힌 복합적인 그 무엇이다.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