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간부 출신인 60대 A씨. 2015년 말 퇴직한 A씨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주식 경험이 전혀 없어 무관심했지만, 회사를 나온 뒤에는 퇴직연금 말고는 마땅한 수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익은 줄어들더니 2018년 초부터는 원금 손실이 생기기 시작했다. B씨가 처음 산 종목으로는 수천만원의 이익을 봤지만, 이후 매수한 해운 관련 종목 등이 문제였다.
손실이 나며 불안해지면서 B씨와 통화도 잦아졌다.
"알지도 못하는 종목이었다. 손실도 났지만 그래도 이익이 났던 적도 있고, B씨가 통화할 때마다 금방 회복할 수 있다고 해서 믿었다"고 했다.
손실은 회복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커졌다. 억 단위도 넘었다.
"그때라도 그만두게 해야 했는데, 손실이 커진 상황에서도 B씨는 좋은 쪽으로만 계속 얘기를 했다. 신용(융자)매매를 했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이자 걱정도 됐다"고 했다.
불안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B씨가 업종 전망 등 그럴듯하게 설명을 잘하고, 원금을 잃은 터라 회복하기 위해서는 빠질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잔고는 수천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잔고는 2천만원.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때에는 500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
A씨와 B씨의 관계는 2020년 10월까지 이어졌다. B씨는 그동안 여러 지점으로 옮겨 다녔는데도 거래는 계속됐다.
2019년 말에는 큰 손실에 다급해진 B씨가 공인인증서를 달라고도 했다. 증권사 지점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거래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손실이 커져 회복시켜 준다고 해서 인증서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회복되지 않았다.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A씨는 작년 8월에야 그동안 매매 명세를 뽑아봤다. 그동안 총 매매금액이 100억원에 육박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매 종목은 4년여 동안 45개. "처음 친구 추천으로 매수했던 2개 종목 말고는 내가 산 것은 없었다"고 A씨는 주장했다.
자신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43개 종목에 대해 B씨가 임의로 주문을 내는 '임의매매'를 했다는 것이다. 임의매매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그동안 신용융자로 나간 이자만 9천600만원, 수수료(거래세 포함)는 1억3천만원에 달했다. 전체 손실액의 약 절반으로, 사실상 증권사 배만 불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실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B씨에게 항의했다. 증권사 측에도 민원을 넣었다. B씨는 자신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고 수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증권사도 일부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과도하게 매매가 많았던 부분에 대해서만 2천여만원을 배상하겠다고 회신했다.
증권사는 "B씨가 주식을 '임의로' 사고판 것이 아니라 A씨와 협의하거나 사후 보고를 하는 '일임매매'로 이뤄졌고, A씨가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으로 서른 차례 가까이 주문을 냈던 사실도 파악했다"며 거래는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다만, 지난해 코로나19로 주식이 급락하던 3월을 전후해 신용매수를 했던 주식이 반대매매로 나가면서 A씨 계좌에서 과다하게 매매가 이뤄진 점이 있어, 이에 대해서는 일부 배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씨로서는 손해액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에 지난 1월에는 금융감독원에 민원도 제기했지만, "자율조정 대상"이라며 증권사와 직접 조정하라는 회신만이 돌아왔다.
손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두고 증권사와 쉽지 않은 분쟁을 벌여야 하는 A씨.
"가족은 물론, 친구들한테도 말 못 하고 수년간 스트레스만 받았다"며 "3억5천만원, 아니 2억5천만원만 남았을 때라도 관뒀으면 이렇게 큰 손실이 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뒤늦은 후회만 남았다.
<연합>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