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냉엄했다.
지난 2017년 '박근혜 정권'을 탄핵시키고 지난해 4·15 총선에서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줬던 민심은 불과 1년 만에 분노의 불길로 돌변했다.
◇ 집값 폭등에 LH 사태까지…들불처럼 번진 '불공정 이슈'
그 와중에 성난 부동산 민심도 정부·여당을 강타했다.
21대 국회 초반 압도적 다수의 원내 의석을 앞세워 강행 처리한 임대차 3법, 주택 공시가격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사실상의 증세 효과 등이 모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과감한 부동산 대책이 오히려 집권 세력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는 재보선 당일 강남 3구의 '분노 투표'로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대형 악재로 돌출했다.
전국적인 집값 폭등에 불만 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공공 주도 주택 공급 정책의 키를 쥔 LH에서 도덕적 해이가 불거지며 여권 전체가 '내로남불'의 덫에 걸린 모양새가 됐다.
여권은 변창흠 국토장관 사의, 국회의원 전수조사, 특검까지 LH 사태 수습 카드를 총동원했지만, 들불처럼 번지는 '불공정' 이슈를 진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이와 보수 성향이 비례한다는 통념을 깨고 20대와 30대가 국민의힘 지지로 기운 것도 공정과 정의를 갈구하는 민심의 한 단면으로 해석됐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내곡동 처가 땅 의혹은 선거 지형을 바꿔놓지 못했다. 거센 심판론 속에서 후보 개인에 대한 네거티브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내세운 '감성 정치' 역시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들에게 '쇼맨십'으로 받아들여지며 역효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 野 단일화에 한 발 빨랐던 쇄신…尹 기대감도 한 몫
야권 후보 단일화는 판세가 기우는 분수령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무소속 금태섭 전 의원의 제3지대 단일화, 오세훈 후보로의 최종 단일화를 거치며 국민의힘이 '컨벤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는 분석이다.
특히 오 후보는 10년의 공백에도 시정 경험을 내세워 나경원 전 의원, 안 대표를 차례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단일화 드라마의 흥행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도 시대전환 조정훈 대표, 열린민주당 김진애 전 의원과 차례로 단일화를 이뤘으나 체급 차이가 워낙 커서 극적 효과는 크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중도 외연 확장과 호남 구애로 보수 혁신에 드라이브를 걸어 단일화와 시너지를 일으켰다. 선거 막판에 이르러서야 "통렬하게 반성한다"고 읍소한 민주당보다 몇 박자 빨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우위를 점한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를 '과거와 미래의 대결'로 규정하고, 재보선 이후의 범야권 대통합 시나리오를 띄우며 준비된 미래 권력을 자처했다.
그런 맥락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재보선 판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권의 고질적인 인물난 속에 윤 전 총장이 전격 사퇴와 동시에 일약 대권 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면서 야권의 차기 수권 능력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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