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년만에 분노로 바뀐 ‘젊은 표심’과 마주했다. 불과 1년전 21대 총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20대와 30대가 싸늘하게 돌아섰다. ‘샤이 진보’는 없었다. 그 결과는 여당의 열세로 곧바로 드러났다. 이번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분석된다.
7일 투표 종료와 함께 발표된 방송3사(KBS·MBC·SBS)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와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는 각각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에게 20%포인트 이상 뒤쳐지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동안 4050세대와 함께 여당 지지를 굳건하게 해왔던 2030세대가 야당지지로 돌아선 것이 민주당 후보들의 고전에 결정적 원인이 됐다. 이번 재보선에서 2030세대는 전체 선거인 중 34.8%를 차지해 4050(36.4%)과 맞먹었다. 이들이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하면서 판세가 뒤집어졌다.
전국적 조사인 1년전 총선과 서울·부산에만 한정된 이번 재보선 결과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다. 2030세대가 1년전에 비해 싸늘한 반응을 보인 점은 분명하다. 실제로 오세훈 후보와 박형준 후보 유세에서 젊은층의 우호적 반응이 여러차례 목격되기도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이날 “그전에는 보수계열 정당들이 60대 이상에서만 지지를 받아 포위됐는데, 이번에는 ‘4050’세대가 역으로 포위당했다”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80년대에서부터 30년 가까이 우리 정치와 사회를 지배한 86세대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나름의 판단과 정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LH 땅투기 의혹’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이 젊은 층 이반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주택을 갖고 있지 않는 2030세대가 이번 부동산 폭등 국면에서 현 정부에 상당한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반감과 현정부가 불공정하다는 인식도 2030세대의 등돌림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부동산에 민감한 강남3구(서초·강남·송파)도 오세훈 후보를 지지하는 ‘부동산 분노 투표’의 경향이 엿보였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보유세 인상에 직면한 상태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오세훈 후보는 강남3구가 포함된 서울 동남권역에서 67.2%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박영선 후보는 30.5%에 그쳤다. 강남3구는 투표율에서도 서울 평균을 앞섰다.
◆‘대선 전초전’ 상징성에 표심 쏠렸다
이번 4·7 재보궐선거는 평일에 실시된 선거임에도 서울의 경우 60%에 다다르는 투표율을 보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날 잠정 집계한 투표율 결과 서울은 58.2%, 부산 52.7%로 조사됐다. 이번 재보선 전체 투표율은 55.5%다. 이 같은 뜨거운 열기는 이번 재보선이 서울과 부산이라는 상징적 도시의 단체장을 뽑는 선거인 데다 대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대선 전초전’으로 치러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총선거, 지방선거 등 전국단위 선거보다는 낮지만 일반적인 재보선 투표율보다는 높은 편이다.
가장 최근인 2019년 4·3 재보선 최종 투표율(48.0%)보다 7.5%포인트 높다. 지난 광역 보궐선거로는 2011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맞붙어 관심을 모은 서울시장 선거가 48.56%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의 지역별 투표율을 분석하면 서울 25개구(區) 중 서초구가 64.0%로 가장 높았고, 강남구(61.1%), 송파구(61.0%) 등의 순이었다. 이들 ‘강남 3구’는 보수 지지세가 강한 곳으로 2018년 지방선거와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도 타지역에 비해 투표율이 높게 나타났다. 양천구(60.5%), 노원구(60.0%), 마포구(59.7%) 등도 뒤를 이었다. 투표율이 가장 낮은 곳은 금천구(52.2%)였다. 관악구와 중랑구도 53.9%로 약세를 보였다. 이들 지역은 지난 총선에서 모두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지역이다. 민주당이 압승한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해당 지역의 투표율은 서울시 평균을 밑돌았다. 보수 텃밭의 높은 투표율과 민주당 우호 지역의 낮은 투표율 양상이 이번에도 재연됐다.
부산에선 연제구 투표율이 55.6%로 가장 높았고, 기장군이 48.4%로 가장 낮았다.
이날 투표시간은 기존의 오후 6시에서 2시간이 연장돼 오후 8시에 마감됐다. 직장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여야는 이날 오후 6시부터 8시까지의 투표율이 막판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역대 선거에서는 30·40대 직장인들이 다수 투표하는 이 시간대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서울의 오후 6시 기준 투표율인 51.9%를 기준으로 봤을 때 오후 6∼8시 서울 지역 투표율은 6.3% 가량으로 추산된다. 다른 시간대보다 다소 높긴하지만 크게 눈에 띌 만한 차이는 아닌 것으로 평가됐다.
◆‘쪽집게’ 된 여론조사… ‘샤이 진보’는 없었다
선거는 ‘여론조사의 무덤’이란 정치권 내 속설이 이번 4·7 재보궐선거에서는 빗나갔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50%를 밑돌면 조직세가 강한 더불어민주당이, 50%를 넘으면 여론조사와 동조화되며 국민의힘이 유리할 것이란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이번 선거의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직전 이뤄진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20%포인트 안팎으로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지층 결집에 더해 ‘숨은 표’가 등장하면 승리할 수도 있다며 자신해왔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여론 조사상 서울과 부산에서 크게 뒤지면서도 막판 역전승’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여론조사가 갖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간 전화 응답으로 짚어낸 여론이 실제 투표함 속 표심과 엇갈린 경우가 많았다. 2016년 20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론조사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점쳤지만, 막상 투표함 뚜껑을 여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얻어 1당이 됐고, 새누리당은 122석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과거보다 선거 여론조사 기법이 고도화하면서 최근 조사 수치와 실제 표심간의 간극이 크게 메워졌다고 말한다. 특히 2017년 안심번호(휴대전화 가상번호) 도입으로 조사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유선전화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20·30대나 1인 가구 등의 여론 파악이 한결 용이해졌다는 설명이다.
이도형·장혜진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