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속에서만 존재하던 한국형전투기(KF-X) 시제1호기가 9일 출고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KF-21 ‘보라매’라는 이름을 얻은 KF-X의 등장은 앞서 개발한 FA-50과 더불어 한국이 독자적인 전투기를 만들 능력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KF-21과 FA-50으로 대표되는 국산 전투기가 실질적인 전투력을 갖추고 세계 시장에 우뚝 서려면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중장거리 정밀타격능력 부족 문제는 개발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고심케 하는 대목이다.
◆동남아 “더 좋은 무장이 필요하다”
한국형전투기보다 앞서 필리핀, 이라크 등에 판매된 FA-50은 빈약한 공격력으로 추가 수출에 난항을 겪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러시아제 수호이 전투기 성능개량과 더불어 경전투기 18대를 도입하는 LCA 사업을 추진중이다. FA-50, 중국과 파키스탄이 공동개발한 JF-17이 후보로 거론된다.
문제는 중거리 공격력. 말레이시아는 먼 곳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전략적 타격능력을 원한다.
JF-17 시리즈 중 최신형인 블록3은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첨단 전자장비를 장착, 사거리 200㎞의 PL-15 공대공미사일과 사거리 350㎞의 라드 공대지미사일을 운용한다.
말레이시아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한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이같은 점을 강조하면서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물밑 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FA-50은 사이드와인더 공대공미사일과 AGM-56D 공대지미사일, 폭탄을 장착한다. 최대 사거리가 25㎞에 불과하다.
현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말레이시아 공군 관계자들이 필리핀을 방문해 FA-50을 살펴봤는데, 비행기 자체는 괜찮으나 자신들의 요구성능(ROC)과는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가격 경쟁력에서도 JF-17보다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KAI로서는 중거리 공격력 확보가 시급하지만. 난관이 적지 않다.
새로운 무장을 기체에 통합하려면 한국 공군이 소요제기를 하고 사업 승인을 거쳐 예산을 확보해야 하지만, 관련 사업에 대해 눈에 띄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 실정이다.
KAI가 자체 투자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영업이익이 1395억 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400억~800억 원으로 추산되는 비용을 들여 항공무장을 새로 장착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KAI는 KF-21 블록1에 장착되는 독일산 IRIS-T 공대공미사일을 FA-50에 쓰는 방안을 말레이시아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용 절감과 성능 강화를 노린 포석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IRIS-T 사거리가 25㎞에 불과해 말레이시아 측이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인접국 태국의 그리펜 전투기가 같은 미사일을 쓰는데, 말레이시아에 IRIS-T를 제안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체 크기로 인해 미티어나 암람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장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은 대안은 유럽 MBDA의 아스람 미사일 정도다.
적외선 영상유도방식인 아스람은 최대 사거리가 60㎞에 달해 FA-50의 공격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체계통합 비용이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중거리 공대지미사일이다. 말레이시아는 중거리 공대지 능력을 요구하지만, FA-50에 장착할 수 있는 관련 무장이 없다.
한국 공군 F-15K에 탑재되는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의 제작사인 독일 타우러스시스템즈는 FA-50 장착이 가능한 타우러스 350K-2(사거리 600㎞) 공동개발을 지난해 한국에 제안했으나, 가시적인 진전은 없는 상태다.
지금 즉시 개발에 착수해도 3년이 걸린다. KF-21 탑재용으로 국내 개발중인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탑재가 불가능하고, 실전배치까지는 10년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같은 문제는 필리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KAI는 앞서 FA-50 12대를 구매한 필리핀에 FA-50의 추가 판매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을 견제해야 하는 필리핀은 말레이시아처럼 중거리 공격력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항공무장 공급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빠르게 공급 가능한 항공무장은 타우러스 미사일과 한국형유도폭탄(KGGB) 정도인데, 타우러스는 FA-50 장착이 가능한 버전을 새로 개발해야 하므로 KGGB 외에는 당장 내놓을 카드가 없다”고 우려했다.
말레이시아는 예산 문제로 단기간 내 기종 선정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필리핀은 F-16V 외에는 경쟁 기종이 거의 없다.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셈이다.
타우러스 350K-2를 서둘러 개발하고 아스람을 도입해 FA-50에 체계통합해 공대공, 공대지 능력 강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KF-21도 무장 강화 필수
9일 오후 시제1호기 출고식을 통해 공개된 KF-21도 공격력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다.
KF-21 블록1 공대공 무장은 미티어와 IRIS-T다. 음속의 4배가 넘는 속도로 200㎞ 이상을 날아가는 미티어 미사일은 아시아에서는 KF-21이 처음 쓰는 우수한 무기다.
반면 IRIS-T는 사거리가 미국산 사이드와인더보다 짧은 25㎞ 수준이고, 표적을 추적하는 탐색기 성능도 부족하다. 2028년쯤 등장할 KF-21 블록2에서는 IRIS-T를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미국 정부의 첨단 항공무장 수출허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럽 MBDA의 아스람 공대공미사일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KF-21 블록2에는 아스람을 장착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스람은 사거리가 IRIS-T의 두 배인 50㎞에 달하고, 급가속 및 초고속 성능을 갖고 있어 적기가 회피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영국과 캐나다 등이 운용하는 F-35나 F-18, 타이푼을 포함한 4.5~5세대 전투기에 장착되고 있다.
공대지 무장 보강도 과제다. 지난 2월 KF-21 미디어데이 당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KF-21 공대지 무장 10종 가운데 미사일은 국내 개발중인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정도다.
2031년까지 200여 발을 생산해 KF-21 블록2에 탑재할 예정이지만, 외국에서도 개발 기간이 15년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계획대로 개발과 생산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높은 고도를 날아가는 미사일이 목표물을 찾는데 필요한 장비는 탐색기다. 영하의 기온에 의한 성에를 막는 기술 확보가 쉽지 않다. KF-21에서 분리된 미사일이 점화되어 날아가는 과정, 목표물을 추적하는 절차 등도 기술적 난이도가 높다.
해외 업체와의 기술 협력은 일정을 단축하면서 리스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독일 타우러스시스템즈가 FA-50을 위해 제안한 타우러스 350K-2를 공동개발하면서 관련 기술이나 시험평가 노하우 등을 얻는 방법도 있다.
이를 통해 KF-21 블록1에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조기 장착, 전력 증강 효과와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1990년대 KT-1 훈련기를 만든 한국은 T-50, FA-50을 개발해 수출하면서 항공우주산업을 계속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항공기 개발 이후 무장 강화에 집중하지 않은 결과 포지션이 애매해졌고, 수출 시장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군과 정부가 FA-50의 성능 향상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2020년대 F-4, F-5가 퇴역하면 FA-50의 임무는 더욱 늘어난다. 현재 수준의 무장능력으로는 감당키 어렵다. FA-50의 성능개량은 전력공백을 막으면서 방산 수출을 돕는 효과가 있다.
중국 JF-17은 수출 시장에 진출하면서 포트폴리오를 170번이나 바꿨다. 바꿀 때마다 성능이 높아져 F-16C와 비슷한 수준까지 향상됐다. 하지만 수출 실적은 별로 없다.
JF-17보다 공격력이 낮은 FA-50이 해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대대적인 성능개량이 필수인 이유다.
KF-21도 마찬가지다. 내년부터 비행시험에 돌입하면 수출 마케팅도 본격화한다. 하지만 현재 무장 능력으로는 F-35A, F-16V, JF-17과의 경쟁이 쉽지 않다.
공격력을 조기에 강화해 전투능력과 수출 경쟁력을 단기간 내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KF-21의 입지도 흔들릴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