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오세훈 서울시장이 첫 부동산 정책 관련 현장 방문지로 선택한 곳은 소규모 민간 정비사업지였다. 오 시장 당선 이후 한강변 ‘35층 층고 제한’과 같은 규제 대상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들썩이고, 공공재개발 중심의 주택공급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와의 대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오 시장이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소규모 민간 재건축 분야에 집중하며 부동산 정책 ‘숨고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오 시장은 부동산 과열 지역을 토지거래허가 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시청 내부사정 때문에 방문일정이 연기됐지만 오 시장이 첫 현장 방문지로 잡은 곳은 강동구 성내동 소재 라움포레아파트였다. ‘스피드 주택공약’을 1번 공약으로 내세운 오 시장이 주택 관련 방문지로 이곳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서울시에 따르면 라움포레아파트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통해 노후 주택을 지하 1층~지상 7층 규모로 신축한 곳이다. 다세대, 다가구 등 세대가 모여 가로(시가지의 일반도로)를 유지하면서 소형 재건축 사업을 진행했다. 54세대가 모여 71세대의 아파트가 탄생했다. 대규모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소규모 개발은 2018년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시행에 따라 시행 면적을 2만㎡로 확대하는 등 사업절차가 간소화됐다. 재개발·재건축은 정비계획에 따라 진행하지만 소규모 개발은 정비계획 없이 세대가 모여 신속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중랑구, 성북구, 은평구 등 강북 쪽을 중심으로 소규모 재개발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인센티브를 통해 활성화하는 것이 오 시장의 공약 중 하나인 모아주택이다. 모아주택은 서울시의회나 국토교통부와 협의 없이 서울시가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다. 오 시장은 정부와 대립점에 있는 부동산 현안보다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부동산 공시가격 재검토를 요청했을 뿐 부동산 공급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강남권 민간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최근 시세가 급등하고 있는 것도 오 시장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1·2차아파트 131㎡ 호가는 최근 40억원까지 치솟았고 현대7차아파트 245㎡는 이달 초 80억원에 거래되면서 최고가를 기록했다. 강남구 은마아파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등 호가도 최근 1억~2억원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은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주변 집값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쓸 수 있는 행정수단으로 토지거래허가 구역 등 방법이 있다”며 “신속하지만 신중하게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 시장은 전날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첫 업무보고에서도 국토부와 대립하기보다는 서울시 자체적인 주택공급 방안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가격 상승 우려가 있는 지역에 대한 방지대책도 주문했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은 업무보고 후 기자들과 만나 “국토부와 굳이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어 보이고, 서울시가 새로운 주택공급 방안을 찾아가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순균 서울 강남구청장은 오 시장의 부동산 공약에 대해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하고 싶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정 구청장은 MBC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집값 억제도 좋지만 주민들의 주거복지 해결을 위해서도 이제는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와 은마아파트 등의) 재건축을 서둘러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아파트 층고도 일률적으로 35층 이하로 못 박아서 마치 성냥갑을 쌓아놓은 것 같은 아파트를 지어선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