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로 12∼13일 멈췄던 현대차 아산공장이 14일 다시 가동됐다. 이틀 사이 이 공장의 기존 생산계획에서 차질을 빚은 생산 대수는 2050대다.
이처럼 공장 가동 중단은 바로 회사 손실로 이어진다. 특히 이번 차량용 반도체 부족사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 국내 자동차업계의 막대한 수익성 저하가 우려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나 완성차 업계는 자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다. 한국 완성차기업의 차량용 반도체 해외의존도는 98%다. 그런데 한국의 파운드리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늘릴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이번에 특히나 공급이 부족한 반도체가 마이크로컨트롤러(MCU)인데, 한국에는 MCU 생산라인이 아예 없다. 삼성전자는 미미한 규모의 차량용 AP, 이미지센서, 메모리반도체 등을 공급할 뿐이다. SK하이닉스는 아직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생산라인 재조정 등을 통해 공급 확대를 기대할 순 있지만 이게 가능한 유일한 파운드리 삼성엔 총수가 없다. 차량용 반도체 사업은 작은 시장규모, 다품종 소량생산 등으로 다른 반도체에 비해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분야로 꼽힌다. 최근 수요가 급증한 5세대이동통신(5G), 가전 관련 라인을 축소하고 차량용을 확대하려면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재구속 수감 전인 올해 1월 새해 첫 경영을 평택 반도체 공장 사업 현장을 점검할 정도로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며 “그가 현재도 경영활동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면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에 분명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번 사태의 과실은 삼성의 경쟁사 TSMC가 따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TSMC는 MCU의 약 70%를 생산한다.
반도체 대응 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해 15일 열리는 청와대의 확대경제장관회의에 대한 재계의 기대도 크지 않은 눈치다. 미국과 중국이 수조원 단위의 반도체 분야 투자계획을 내고,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로 각국의 파운드리를 자국에 유치한다며 발벗고 나서는 동안 우리 정부는 사실상의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가 향후 2년간 반도체 관련 인력 4800명을 공급하는 등의 계획을 밝혔지만 이는 장기대책일 뿐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완성차기업이 부품 공급사를 다변화하고, 자체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품사 보쉬는 새 반도체 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올해 말부터 가동을 시작한다. 또 지난해 덴소와 토요타는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