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을 오르다 보니 잎이 진 단풍나무는 가시 같고 흘러내린 자갈이 길을 막는다. 뾰족한 돌이 낙엽에 가려 있다 발을 딛자 삐져나오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다. 손으로 진흙을 짚고 일어났다. 뒤따라오는 사람의 웃음거리가 될까 붉은 낙엽 하나를 주워들고 기다렸다. 실학자 박제가가 쓴 ‘묘향산소기’의 한 대목이다. 요즘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실수가 드러날까 봐 남 탓을 하며 진흙을 뿌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터지자 전임 정부 시절부터 누적된 부동산 적폐 탓으로 돌렸다.
옛날에 청렴을 내세웠으나 실은 재물을 탐하는 자가 있었다. “아무 날은 내 생일이니 삼가 선물을 바치지 말도록 하라.” 그는 이렇게 방을 내건 뒤 고을 사람을 모아놓고 백로를 제목으로 시를 짓게 했다. 자신의 청렴한 행동을 널리 알리려는 속셈이었다. 한 사람이 문득 읊었다. “날아올 젠 학인가 싶더니만 내려앉아 어느새 고기를 찾네.” 우암 송시열의 ‘옥천군이망재기’에 나오는 글이다. 위선을 꼬집는 선비의 붓끝이 칼보다 매섭다. 우리 사회지도층의 표리부동과 닮지 않았나. 공정을 외친 조국 전 법무장관은 자녀 입시에 반칙을 일삼았고, 서민 임대료를 걱정하던 위정자들은 자기 집 전월세를 먼저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