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렇다고 이걸 여기에 내리면 어떡해….”
14일 낮 12시15분쯤 서울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1번 출구 앞. A아파트 단지의 입구이기도 한 이곳에 화물차량이 정차했다. 택배기사 3명이 화물칸에 가득 실린 택배 상자를 인도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봤다. 한 입주민이 인근에 있던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야! 택배!”라고 부르며 항의하자, 인근에 있던 택배노조 위원장이 “사람한테 ‘택배’가 뭡니까?”라고 받아치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경찰이 오고 나서야 양측 마찰은 일단락됐지만, 입주민은 “노조가 할 일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한다”고 성토했다. 20여분에 걸친 작업 끝에 어느새 길에는 택배가 가득 쌓였다. 택배노조는 “오늘 이 아파트로 배송된 택배 800여개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택배 노조의 ‘강수’에도 A아파트 주민들은 입장을 고수할 태세여서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 김모(38)씨는 “단지 안에 차도가 따로 없어서 모든 차는 지하 주차장으로 다닌다”며 “택배차량이 들어올 경우 아이들이 뛰어노는 거리를 지나다니게 된다.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린이 등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 택배차량 지상 출입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입구로 택배를 찾으러 가는 불편함을 감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입주민 조모(65)씨는 “이 아파트는 애초에 지상에 차가 없도록 설계됐다”며 “입구에서 손수레로 끌고 배송하는 절충안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택배노조 측이 배짱을 부리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택배기사들은 A아파트 측에서 사전 논의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고 반박했다. 택배노조는 이날 단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차량 제한은 노동자에게 더 힘든 노동과 비용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입주자대표회의는 지금이라도 책임을 지고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택배업체와 정부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노조는 “택배사가 A아파트의 택배 접수를 중단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등 책임을 지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며 “정부 역시 중재를 위한 노력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민·김병관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