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파견하는 유럽 국가들
유럽 국가 중 인도·태평양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는 프랑스다.
◆국익 보호·대미 관계 강화 등 다목적 포석
유럽이 인도·태평양 지역 중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EU와 자국의 이익을 지키면서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존의 유럽·중국 관계가 협력 위주였다면, 이제는 전략적 경쟁 개념과 대미 관계가 추가로 포함되면서 협력·경쟁·견제가 함께 이뤄지는 구도로 변화한 셈이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은 동유럽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자국 인접 지역에 중국이 외교·경제적 진출을 강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월 미국 애틀랜틱 이사회 세미나에서 “중국이 투자를 명목으로 유럽에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프랑스가 중시하는 북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와 중동 일부 국가에 코로나19 백신 제공을 앞세워 영향력을 증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는 본토에서 1만5000㎞ 떨어진 해외 영토인 남인도양 마다가스카르 인근 마요트·레위니옹 섬,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왈리스 푸투나 등에 병력 8000명과 해군 함대를 배치하고 있다. 과거에는 현재 병력으로도 인도·태평양 지역 내 영토와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지킬 수 있었으나, 중국 해·공군이 인도양과 남중국해 등에 진출하면서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럽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두고 ’중국이 유럽과 가까운 곳에 진출한다면, 유럽도 중국 인접 지역에 관여하겠다’는 맞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브렉시트를 단행한 영국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할 돌파구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찾고 있다. 동맹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기조에 호응하면서 역내 국가와 외교·군사적 유대 관계를 강화하는 ‘일석이조’ 전략이다. 실제로 영국은 지난 3일 일본과 외교·국방장관(2+2) 회담을 갖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을 파견하면서 미국과 공동훈련을 진행하기로 했다.
유럽의 인도·태평양 지역 진출 과정에서 해군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여파가 남아 있고, 러시아를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럽은 육·공군을 인도·태평양에 장기간 파견하기 어렵다. 역내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해군 함정은 자체적인 공격 및 방어수단을 갖추고 있으며 무력시위 효과가 있고 정치적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에 따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해군 전투함이 인도·태평양에 전개하는 현재 양상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中, 120년 전 ‘의화단사건’ 비교하며 애국심 고양
유럽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인들은 현재 상황을 120년 전 의화단사건과 비교하고 있다. 쿼드와 유럽이 중국을 압박하는 현재 정세가 의화단사건 당시와 똑같다는 것이다. 1900년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도와 서양 오랑캐를 멸하자)’을 외치며 봉기했던 의화단은 수도 베이징을 점령하고 서구 열강의 공사관을 공격했으나 8국 연합군에 진압됐다. 청나라는 1901년 신축조약을 체결하고 은 4억5000만냥을 배상금으로 지불했다.
중국 정부와 관영 언론은 현재 상황을 의화단사건 등 과거와 대비하며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양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강경한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서방이 지난달 22일 중국의 신장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에 동시다발적인 제재를 단행하자 중국은 유럽 측 인사 10명과 EU 이사회 정치안전위원회 등 단체 4곳을 제재하는 맞대응에 나섰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오늘의 중국은 1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외국 열강들이 대포 몇 대로 중국의 대문을 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영영 지났다”고 비판해 중국인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느슨하게 하려는 외교적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기후변화 화상 정상회의를 갖고 “기후변화 대응이 무역 장벽의 구실이 돼서는 안 된다”며 유럽 기업에 대한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5일 아란차 곤잘레스 라야 스페인 외교장관과 통화에서 “중국은 서방과 조율을 강화해 경제무역과 에너지 등 분야에서 협력, 관광과 인문 교류를 강화하며 스페인과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지난달 말 헝가리, 세르비아, 그리스, 북마케도니아를 방문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