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백신 확보’ 자신→한 달 앞도 모르는 ‘깜깜이 접종’…韓 경제 최대 리스크로

한·미 정상회담서 백신 확보 주력
만 65∼74세 접종은 여전히 불투명
野 “백신으로 국민 희망고문 말라”

AZ백신 700만회분 5·6월 도입 예정
구체적 날짜 미정… 5월 계획 못 세워
하반기 2400만명 접종도 불확실 상황

국내외 기관서 ‘경기 하방 요인’ 지목
접종률 아직 2% 그쳐 우려 전망 속출
외신들 “방역 모범 한국, 백신 느림보”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수급 불안정과 일부 백신의 부작용 우려로 우리나라의 백신 도입·접종 일정과 ‘11월 집단면역 완성’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지면서 정부가 다급한 모양새다. 정부는 당초 6월로 잡혔던 경찰, 소방, 동네의원 의사 등 ‘사회필수인력’ 백신 접종을 오는 26일부터 하기로 했지만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우선 접종해야 할 만 65∼74세 접종 일정은 불투명하다. ‘K방역’과 ‘백신 확보 이상무’를 자신하던 문재인 대통령도 “방역 상황은 여전히 안심하기 어렵고, 집단면역까지는 난관이 많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방역 모범국가, 경제위기 극복 선도그룹으로 평가받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연속으로 초대받는 나라가 됐다”면서 “이런 국가적 성취는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이 집단면역까지 험난한 상황임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5월 후반기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 “경제 협력과 코로나 대응, 백신 협력 등 양국 간 현안에 긴밀한 공조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나 무엇보다 백신 공급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일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대상자들에 대한 접종을 서두르고 있다. 희귀혈전증 부작용 우려가 제기된 만 30세 미만을 제외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약국 보건의료인 등 25만7000명, 만성 신장질환자 7만7000명, 경찰·해양경찰·소방 등 사회필수인력 17만3000명은 26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다. 군인 12만9000명도 국방부와 접종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 사회필수인력은 6월 접종 예정이었지만 만 30세 미만 취약시설 종사자 등이 접종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일정을 앞당겼다.

 

장애인·노인·보훈 돌봄 종사자와 항공 승무원은 이날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날 추진단은 만 65∼74세 접종 계획은 발표하지 않았다. 5, 6월 들어오는 아스트라제네카 700만회분을 활용한다고만 밝혔다. 만 30세 미만 제외로 남은 물량은 3분기 접종 예정이던 60∼64세에 당겨 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은경 추진단장은 “현재 65세 이상 어르신들 접종은 5월에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도 “가장 큰 변수는 아스트라제네카 700만회분이 언제 공급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은 “백신으로 국민을 희망고문하지 말라”며 정부를 질타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국무총리 직무대행을 맡게 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국 백신 접종률이 세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아프리카 르완다, 남아시아 방글라데시보다도 못하다”며 “현재 접종 속도라면 집단면역을 달성하는 데 6년4개월이 걸린다는 평가도 있다”고 지적했다. 홍 직무대행은 “그런 잘못된 뉴스를 강조하면 국민이 불안해지기만 한다. 왜 이런 잘못된 자료를 전 국민이 보게 하느냐”고 항의했다.

 

민주당은 당정회의를 열고 백신 수급을 직접 챙기기로 했다.

19일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에서 돌봄시설 종사자들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뉴시스

◆ 혈전 논란 AZ도 태부족… 한 달 앞도 모르는 ‘깜깜이 접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급 불안에 백신 접종 일정을 짜야 하는 방역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우선 가능한 사람들 중심으로 맞히기 시작했지만, 백신 접종 상황은 한 달 뒤도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19일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에 따르면 이날까지 국내 들어온 백신은 화이자 백신 161만7000회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00만6000회분 총 362만3000회분이다. 여기에 상반기 중 아스트라제네카 866만8000회분, 화이자 579만7000회분 도입이 예정돼 있다. 일정대로 도입되면 상반기 아스트라제네카 1067만4000회분, 화이자 741만4000회분이 공급된다.

 

화이자는 상반기 1, 2차 접종이 가능한 물량이다. 화이자 백신은 1차 접종 후 3주 뒤 2차 접종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환자 치료 담당 의료진 약 6만3000명, 만 75세 이상 약 350만명, 노인시설 입소·종사자 약 16만명 등 총 372만3000명 정도가 화이자 접종 대상이다. 이들이 두 차례씩 맞으려면 744만6000명분이 필요한데 평균 접종 동의율이 90%에 못 미치는 걸 고려하면 충분한 분량이다. 코로나19 환자 치료 의료진은 95% 이상 2차 접종까지 완료했다. 75세·노인시설 어르신은 오는 23일부터 2차 접종을 한다.

19일 서울 강서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접종 후 이상반응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부족하다. 상반기 접종 대상 인원은 약 780만명가량이다. 현재 물량으로는 290만명 정도만 2차 접종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1차 접종 후 11∼12주 이후 접종을 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2월26일 초기 접종자들의 2차 접종분은 있으나 6월 접종자들이 2차 접종할 백신은 3분기에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개별계약한 아스트라제네카 700만회분은 5, 6월 도입된다지만 구체적인 도입 날짜는 미정이다. 이 때문에 접종 계획은 4월까지만 제시돼 있다. 정은경 추진단장은 “백신 제조사가 백신 공급 시기를 한두 달 전에 확정하기에 우리가 원하는 조기 확정이 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 상황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상반기 1200만명 접종 계획에서 만 30세 미만 64만명 정도가 제외되면서 3분기 접종 인원이 더 많아졌다. 전 국민의 70%가 올해 안에 1차 접종이라도 마치려면 하반기에 2400만명 이상이 집중적으로 접종해야 한다.

 

그러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희귀혈전증 우려로 30세 미만이 맞을 수 없다. 얀센 백신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처럼 희귀혈전증 부작용 우려가 제기된 상황이다. 모더나 4000만회, 노바백스 4000만회분 공급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화이자, 모더나는 전 세계적으로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해 우리가 필요한 분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은 화이자, 모더나 백신에 대해 부스터 샷(추가 접종) 계획까지 검토하고 있다. 또 다른 백신 부작용, 변이 바이러스, 항체 지속기간 등 새로운 변수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에 대한 면역은 접종 1∼2년 뒤에는 유의미하게 떨어져 추가 접종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고,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도 고려해야 한다”며 “향후 전망까지 감안해 백신 확보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40대 간호조무사가 사지마비 증상 등을 야기하는 급성 파종성 뇌척수염 진단을 받고 병원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진단에 따르면 이 환자는 지난달 12일 백신을 접종했다. 같은 달 19일 두통, 두드러기 등 이상반응이 나타난 뒤 증상이 악화해 26일 입원해 현재 치료를 받고 호전 중이다. 박영준 추진단 이상반응조사지원팀장은 “1개월 이후 추가 검사를 시행해 최종 진단명을 확인한 뒤 백신과의 인과성을 심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관계자가 19일 인천시 부평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백신 접종 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1

◆ ‘느린 백신 보급’ 韓 경제 최대 리스크로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와 비교해 한국의 백신 보급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9일 국제기구를 포함해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는 국내외 기관의 전망 등을 종합하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에서 가장 큰 경기 하방 요인은 ‘느린 백신 보급 속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직전 전망보다 0.5%포인트나 끌어올린 3.6%로 전망하면서도 “코로나 재확산 및 백신 접종 속도 둔화는 주요 경제 하방 리스크”라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지난달 ‘세계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백신 보급 가속화로 경제심리가 조기 회복될 경우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7%로, 백신 지연·변종 바이러스의 대규모 확산의 경우 4.5% 성장을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백신 보급 속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5일 간담회에서 “코로나19 재확산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백신 접종 속도가 아직 2%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간연구소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같은 날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돼 확진세가 증폭하고 백신 보급마저 지연된다면 성장률은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까지 전망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8일(현지시간) “지난해 줄곧 유럽과 미국이 높은 감염·사망률로 고전할 때 환태평양 국가들은 다양한 조치들로 재앙을 모면했다”며 “한국은 광범위한 검진을 했고, 호주와 뉴질랜드는 봉쇄정책을, 일본은 마스크 착용과 격리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제 그 역할은 뒤바뀌었다”며 “바이러스를 상당 부분 진압했던 국가들은 백신 접종 속도가 가장 느린 국가들이 됐고, 영국이나 미국은 백신 접종에 앞서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느림보’(laggards)들이 낮은 감염률이라는 시간의 사치를 누렸다”고 표현했다.

 

미국 CNN방송은 아태 국가들의 ‘백신 신중론’이 백신 확보에 걸림돌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영국과 미국은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서 백신 확보에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백신 접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에게 질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 野 “11월 집단면역 사실상 불가”…  洪 “잘못된 뉴스로 국민불안”

 

19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야당은 정부의 ‘백신 무능론’을 강조하며 날을 세웠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4·7 재·보궐선거에서 드러난 민심 이반을 의식한 듯 병사월급 현실화, 코로나19 손실보상법 소급적용 등을 꺼내 들며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국무총리 직무대행을 맡게 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국의 ‘백신 외교’의 미흡함을 강조하며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정 의원은 “일본이 미국과의 정상회담으로 단번에 백신 가뭄을 해결했다”며 “우리 백신 외교 역량도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총리보다 성과를 못 거두면 국민의 실망감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직무대행은 저희도 1억5200만회 정도 계약이 체결돼 있다”며 “정부를 믿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코로나 허언·동문서답’이라는 시각자료를 제시하며 문 대통령의 코로나19 관련 발언 팩트체크에 나섰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9일 문 대통령이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으나 얼마 안 가 하루 확진자는 600명에서 1000명으로 치솟았다. 지난 3월 문 대통령이 “오는 11월까지 집단면역을 완성하겠다”고 했으나 정 의원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홍 직무대행은 발끈하며 “우리 정부도 외교적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맞받았다. 이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반발로 본회의장에서 고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백신 공세에 가세했다. 심 의원은 “정부가 자꾸 헛된 약속과 희망고문을 하니 국민들이 불신한다”면서 “백신 조기도입 실패에 대해서 솔직히 인정하고 전략을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홍 직무대행은 민주당 문진석 의원의 백신 관련 질의에 “전날 기준 백신 기도입분이 362만, 상반기 중 도입 확정분이 1447만으로 합쳐서 1809만분이다. 상반기에 1200만명에 대해선 백신을 공급할 수 있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대정부질문에서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7 재·보궐선거를 편파적으로 관리했다며 민주당의 ‘기호 1번’을 연상케 한다는 논란이 일었던 TBS의 ‘#일(1)합시다’ 캠페인 등을 언급했다. 홍 직무대행은 “제가 답변하기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라면서도 “지하철역 출구가 1∼8번이 있는데 1번 출구 사진을 찍고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대꾸했다.

 

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4차 재난지원금 결정 당시 기재부가 재정 확대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또 손실보상법 관련 소급적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홍 직무대행은 “왜 재정이 아무것도 안 했다고 판단하느냐. 동의하기 어렵다”며 “(소급적용은) 자칫 설계가 잘못되면 사회적 갈등도 올 수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남자’(20대 남자)에 대한 여당의 구애도 이어졌다. 문진석 의원은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병사월급 현실화와 관련해 서욱 국방부장관에게 “2025년에 병장 월급이 96만원으로 인상될 예정인데 내년으로 앞당길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서 장관은 “의원 말에 공감한다.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또는 사면 가능성과 관련해 “검토한 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회장의 가석방 내지 사면 문제는 대통령이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는 이상 아직 검토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장관은 ‘라임 사태’ 검사 술접대 의혹과 관련, 최근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침묵하고 있다는 민주당 김영호 의원의 지적에 대해선 “장관으로서 상당히 유감”이라고 답했다. 또 ‘검찰개혁에 대한 검찰의 조직적 저항을 피부로 느끼느냐’는 민주당 박성준 의원의 질의에는 “검찰 조직문화가 개선됐느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지만, 조직적 저항은 현상적으로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솔직한 소회”라고 설명했다.

 

이진경·이도형·이동수·윤지로 기자, 세종=박영준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