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 놓고… “국제법 존중했다” vs “예외 뒀어야”

재판부, 위안부 피해자들 日정부 상대로 낸 2차 소송 각하
법조계 관계자 “이번 판결 국제법 존중주의 중시한 것”
이용수 할머니 “국제사법재판소로 갑니다”… ICJ 회부 의지
21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488차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소녀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각하됐다. 지난 1심 판결과 정반대 결론이 나온 것이다. 법조계에선 “국제법을 잘 따랐다”는 주장과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를 뒀어야 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각하했다.

 

◆ 위안부 사건에 국가면제 원칙 인정한 재판부

 

재판부가 소를 각하한 건 위안부 사건에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된다고 봐서다. 재판부는 “국제관습법은 외국의 비주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주권적 행위에 대해선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제한적 주권면제론을 채택하고 있다”며 “당시 일본이 저지른 행위는 위법한 주권행사이기 때문에 주권적 행위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일본 총독부가 피해자들을 위안부로 차출하고, 일본군이 주둔한 지역에 위안부를 배치해 성관계를 강요했기에 군이 강요한 전형적인 공권력 행위”라고 덧붙였다.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을 마친 뒤 이상희 변호사가 입장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사건에 있어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할지 여부에 대해선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국제법에 능통한 한 전문가는 “국내적으로는 인권이 더 중요할 수 있지만 국제 관계에서는 국제법이 우선한다”며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헌법적 가치의 일부인 국제법 존중주의를 중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한민국도 세계의 일부인만큼 너무 국내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반면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을 지낸 강성민 변호사는 “특정 국가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불법행위에 대해서까지 주권면제를 인정하게 되면 국가에 의한 개인의 권리 침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다”며 “이런 경우에는 예외를 둬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헌법재판소에서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갖는다고 인정했는데 이를 국가면제 때문에 행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 재판부 “한·일 합의는 권리구제 수단”

 

이날 재판부는 2015년 12월 이뤄진 한·일 합의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권리구제 수단이 된다고도 봤다. 사법부 판단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권리구제 수단이라는 원고 측 주장을 살펴보며 나온 판단이다.

 

재판부는 “사망한 피해자를 포함한 전체 피해자 숫자 240명을 기준으로 봐도 99명, 즉 41.3%에 대한 현금지원이 이뤄졌다”며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한·일 합의는 대체적 권리구제 수단으로 볼 수 있고, 외교부장관도 공식적 합의로서의 한·일 합의를 인정하고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한·일 합의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서도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일본학)는 “2015년 이뤄진 위안부 합의가 형식적으로 미흡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국가 간 협약이고 대통령도 합의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취했다”며 “이를 부정하면 한국의 외교적 입지가 어려워진다”고 평가했다. 재판부의 입장과 궤를 같이 한 것이다.

 

하지만 강 변호사는 “재작년에 헌법재판소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구속적 합의에 불과하다고 봤다”며 “상호 간의 노력과 협조 의무만 있을 뿐이지, 권리와 의무를 창설시키지 않아 합의가 권리구제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이 열린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이용수 할머니 뜻처럼 국제사법재판소(ICJ) 갈까

 

이날 선고를 보러 온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이 끝난 뒤 “국제사법재판소로 갑니다”라며 위안부 사건을 ICJ에 회부하고 싶다는 의지를 다시 드러냈다. 하지만 위안부 사건이 ICJ에 회부되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법 전문가는 “양국이 재판에서 무엇을 물어볼 것이냐는 ‘청구취지’를 합의해야 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달라 합의가 어렵다”며 “ICJ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강성민 변호사 역시 “ICJ를 가는 건 험난한 과정”이라며 “가서도 승소판결을 이끌어내려면 ICJ 재판부가 전향적인 결정을 해야하는데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