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첫 번째 소송 때와 달리 피해자들이 사실상 패소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사법부를 통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개개인에 대한 구제가 일시정지될 뿐 아니라 지난 1월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 국내 일본자산의 강제집행을 준비하던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1·2차 손해배상 소송의 결론을 가른 결정적 요인은 국가면제 원칙 적용 여부였다.
재판부는 또 “심각하게 인권을 침해했다고 인정된다고 해도, 그 요건이 갖는 불명확성으로 향후 국가면제 인정 범위에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며 법원이 국가면제 적용 범위를 해석하는 것에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국가면제 적용 범위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런 의사 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법원이 추상적 기준만 제시해 예외를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가면제 적용 범위를 재판부가 판단하게 될 경우 향후 그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제각각 들쭉날쭉한 판단이 나오고, 외교적 논란 등 국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위안부 강제 동원이 민간인 업체를 통한 상업적 행위가 아닌 일본 정부의 공권력 행사라는 점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에 따르면 사법(私法·개인 사이 관계를 규정한 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위안부 동원이 주권 행위가 아닌 상업 행위, 즉 사법적 행위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일본)는 군의 요청에 따라 총독부 행정조직을 이용해 경찰 등의 협조를 받아 피해자를 차출하고 군 위안소에 배치해 성관계를 강요했다”며 “전형적인 공권력 행사라 상업적인 행위로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을 대리한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이날 재판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 수단이라고 본 데 대해 “헌법재판소에서도 2015년 한·일 합의가 법적인 권리 절차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명시했는데 반하는 결정이 나왔다”며 “한·일 합의를 권리구제 절차로 본 것은 도저히 저희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피해 할머니 측이 항소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결국 대법원이 국가면제 원칙과 관련해 최종 정리를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여상원 변호사는 “(국가면제 원칙 적용 여부는) 결국 법률 해석에 관한 문제”라며 “대법원에서 정리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