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대응 ‘선방’한 오스트리아·핀란드
14일 외신 등에 따르면 올해 35세인 쿠르츠 총리는 처음이 아니고 두 번째로 총리직을 수행하는 중이다. 31세이던 2017년 12월 국민당 대표 자격으로 총리를 맡아 2019년 5월까지 집권했다가 다시 8개월 만인 지난해 1월 권좌에 복귀했다. 쿠르츠 총리가 속한 국민당은 중도우파 정당으로 그간 오스트리아 국민 사이에 ‘낡고 고루하다’는 이미지가 강했으나, 2017년 총선 당시 젊고 참신한 그를 내세워 압승했고 결국 정권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 트럼프 시대 끝장낸 젊은 정치인·유권자들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유럽에 비해 더 보수적인 미국은 당장 30대 정치인이 대권에 도전하거나 민주·공화 양대 정당의 당권을 잡을 처지가 못 된다. 다만 상·하 양원으로 구성된 연방 의회에선 MZ세대 정치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MZ세대 중에서도 한층 더 젊은 Z세대, 그러니까 2000년대 들어 출생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뜨겁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1989년생으로 올해 32세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뉴욕주)이다. 미국에서 소수인종으로 통하는 히스패닉인 그는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뉴욕에서 바텐더로 일하다가 2016년 대통령선거 때 민주당 대선 후보에 도전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캠프에 참여하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처음 당선됐고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과 더불어 민주당 강성 진보파의 상징으로 꼽히는 일한 오마르(39) 하원의원(미네소타주)도 주목해야 할 MZ세대 정치인이다. 1982년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무슬림 난민 출신이란 이력부터 독특하다. 8살에 난민수용소에 들어가 4년을 생활하고 12살에야 미국으로 입국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과 마찬가지로 여성, 소수민족, 난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 대변에 앞장선다.
MZ세대 진보 정치인들의 위력은 지난해 11·3 미국 대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공화당이 현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일찌감치 대선 후보로 낙점한 반면 민주당은 샌더스 상원의원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태어나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Z세대 유권자들은 애초 샌더스 의원 쪽에 더 기울었으나,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신속히 ‘바이든 지지’로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오카시오코르테스, 오마르 의원 등 민주당 진보 정치인들의 설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표 시작 후 한동안 트럼프·바이든 두 후보는 그야말로 백중세를 기록했다. 결국 바이든 후보가 51%가 조금 넘는 득표율로 신승을 거두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선거가 끝난 뒤 미 언론은 “18∼24세 유권자의 65%가 바이든 대통령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 “발탁은 없다”… 청년 정치인들 스스로 커야
맹목적인 자국 우선주의와 동맹국 경시, 그리고 인종차별 논란으로 점철된 트럼프 시대를 끝장내고 ‘국제적 공조 복원’과 ‘미국 사회의 통합’을 내건 바이든 시대를 여는 데 MZ세대 정치인과 Z세대 유권자들이 그야말로 핵심적 역할을 한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기성세대와 기득권을 향해 ‘우리 손으로 직접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한 젊은 세대들의 다짐이 주효했다”고 MZ세대의 정치적 활력을 높이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79세로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에 해당한다. 여당인 민주당의 실력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81세다. MZ세대의 정치적 약진에도 미국을 움직이는 권력은 여전히 70∼80대 노정객들의 손에 쥐여 있는 셈이다. 다만 지난 대선에서 MZ세대의 덕을 톡톡히 본 바이든 대통령이나 여당 지도부는 젊은 층의 눈치를 살피고 또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과거 어느 정권보다 더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MZ세대에 해당하는 소장 정치인 피트 부티지지(39)를 일약 교통장관으로 임명해 바이든 내각에 포진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20∼30대 청년 정치인을 과감히 요직에 기용함으로써 정치를 쇄신해야 한다는 얘기가 수시로 나오지만,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한 ‘깜짝’ 이벤트성 발탁 인사만으로는 MZ세대가 정계 주류가 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회의론 또한 만만찮다.
오스트리아 쿠르츠 총리나 핀란드 마린 총리는 30대 젊은 나이지만 정치 경력은 제법 길다. 쿠르츠 총리의 경우 앞서 소개한 것처럼 17세에 정당인 생활을 시작해 지방의회 의원(2008∼2012), 외교장관(2013∼2017) 등 필수 경력을 쌓은 뒤 총리직에 올랐다. 마린 총리 역시 20대 초반 정계에 입문한 후 지방의회 의원(2012) 및 의장(2013), 국회의원(2015), 교통장관(2019) 등을 거쳤다. 내각 수반이 되기 전 적어도 15년간 정치·행정을 경험한 셈이다. MZ세대 중에서 장차 정치인으로 대성하려는 꿈을 가진 이들은 최대한 일찍 정당에 가입해 청년 조직이나 지방 조직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은 다음 중앙 무대에 도전하는 것이 일종의 정석처럼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