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면역학의 시대인가 보다. 나는 바이러스학 전공자로 학위 후 연수과정에서 에이즈 병리기전을 연구하면서 면역학을 뒤늦게 공부한 사람이다. 1996년 에이즈 치료제로 칵테일요법이 개발된 이후 최근 들어 에이즈는 더 이상 치명적 난치성 질환이 아닌 만성 감염성 질환으로 분류되고 의학계와 생명과학계는 다시 21세기 인류가 넘어야 할 큰 산인 암 정복에 집중하게 되었다.
20세기 암치료제 개발사를 보면 1990년대 말까지는 합성신약에 기초한 화학적 항암제가 대세였다. 그러나 화학적 항암제가 몸의 면역계와 정상조직에도 손상을 입히는 등 부작용이 심해 2000년대 접어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허셉틴(유방암치료제), 아바스틴(대장암, 폐암치료제) 같은 항체치료제가 개발되어 적응증을 확대해 나가더니,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아예 면역치료제 시대로 접어들면서 면역세포 치료제(immune cell therapy),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 같은 신기술이 개발되어 암치료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우리 몸에 발생하는 암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 기대를 모았던 새로운 패러다임의 면역치료제도 아직은 효과가 제한적이고 암치료 시장에서 처음 기대만큼 획기적인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명체가 대부분 그러하듯 우리 몸은 면역항상성(immune homeostasis)을 유지하려는 힘이 있고 그 힘은 회복탄력성(resilience) 범위 내에서 효과적으로 반응한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리면 면역세포 중 감기에 대응하는 면역세포의 수가 늘어나고 활성화되어 감기 바이러스를 제거한다. 그러나 상황이 종료되면 그 면역세포의 수와 활성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식사를 하면 피가 소화기관으로 몰려 소화를 돕고, 공부를 할 때는 머리에 산소와 에너지 공급을 위해 피가 머리에 쏠리지만 상황이 종료되면 혈액의 쏠림현상은 끝나고 혈액순환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인위적으로 이런 면역항상성을 교란시키는 경우 회복탄력성이 깨어져 몸에 문제가 생기고 때로는 더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배용수 성균관대 교수·생명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