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1693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의 양은 압도적이다. 웬만한 박물관을 하나 세워도 부족함이 없는,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여서 놀라움도 컸다.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인왕제색도였다. 18세기 조선에서 꽃피운 진경문화의 상징 같은 걸작이다. 세간의 눈길은 인왕제색도를 포함한 국보, 보물 60점에 쏠렸다. 역사성, 희귀성, 예술성 등에서 최고의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가 관리하는 문화재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국보, 보물 60점을 뺀 2만1633점. 각각의 명칭으로 불리며 그것이 가진 개별적 가치로 기억되는 60점과 달리 이건희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이 많은 유물은 모두 비지정문화재다.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관심, 애정이 대체로 이렇다. 지정문화재, 특히 국보·보물에 대한 그것은 크고 각별하다. 수많은 문화재가 모여 있는 박물관에서 국보·보물임을 알리는 표식을 단 전시품 앞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은 조금 더 머물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화재의 대부분은 비지정이다. 관심과 애정이 덜하니 비지정문화재의 처지는 그만큼 옹색하다. 제대로 된 소장처에 있는 것이야 그렇지 않지만 훼손, 분실, 도난 등이 거의 대부분 비지정문화재를 대상으로 한다. 활용과 연구에서도 비지정문화재의 소외는 마찬가지다. 박물관에서 수장고에서 나오지 못해 사장되다시피 하는 소장품은 비지정문화재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건 아니다. 최근 변화가 시도되고 있긴 하지만 문화재 정책의 중심에서도 한참은 벗어나 있다. 낮은 관심과 애정, 저조한 활용과 연구, 정책적 수혜의 부족 등이 맞물리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는 듯도 싶다.
문화재의 가치는 종종 ‘발견’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 역사성이 눈부셔서 순식간에 최고의 대우를 받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주목해서 연구하고, 적절한 의미와 이야기를 밝혀내며, 그것을 널리 알려 활용함으로써 오래된 물건에 불과하던 것이 각별한 아우라를 가진 존재로 탈바꿈한다. 시작은 물론 관심과 애정이다.
이건희 컬렉션 관련 취재를 하며 “지정된 것 못지않게 가치가 큰 비지정도 상당할 것”이란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지정문화재에 비해 공개된 적이 많지 않고, 접근도 어려우니 전문가들조차 어떤 것들이 있을지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었다. 2만 점이 넘는 수량이니 궁금증을 해소하려면 시간은 좀 걸릴 것 같다.
기증을 받은 국립중앙박물관은 6월에 전시회를 열고, 학술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약속이 어떤 결실을 거둘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여러 차례 활용되고, 상당한 연구가 이뤄진 지정문화재보다는 비지정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활용, 연구가 많을 것이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대개의 비지정문화재와 이건희 컬렉션 속 비지정문화재의 처지를 비교한다는 건 맞지 않다는 건 안다. 주목도, 보살핌의 정도가 천양지차 아닌가. 다만 한동안은 지속될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비지정문화재 전반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정도는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