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경악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사건이 주목받고, 대책이 발표되는 와중에도 ‘아동’은 보지 못한다. 피해아동이 이후 어떻게 치료받고 치유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입양된 동생이 학대받는 걸 봐야 했던 언니, 동생이 갇힌 여행가방에 올라가야 했던 형제들, 빈집에 버려지는 아이를 봐야 했던 아이 등 또 다른 아이들의 ‘다친 마음’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학대 아동 2명 중 1명 정신질환 등 앓아
학대는 아동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단순한 신체적 손상에 그치지 않고 지능·언어·신체적 발달의 지연을 보이며, 자아 기능 손실, 트라우마, 자학적·파괴적 행동 등의 심리적 후유증도 나타난다.
학대받은 아동 2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2015년 발행한 ‘아동학대 피해 아동의 정신질환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학대 경험이 있는 0∼18세 아동 61명 중 약 50%가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23%로 가장 많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21.3%, 우울장애 16.4% 등의 순이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학대 후유증이 ‘학대 대물림’이라는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10살 조카를 물고문해 숨지게 한 이모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고, 7살 아이를 학대한 끝에 사망케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사건의 계모 역시 어린 시절 계모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에서도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생애주기별 학대 경험의 상호관계성 연구’(2019년)를 보면 가정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2153명 중 52.8%가 아동기와 성인기 때 모두 피해를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36.7%는 아동기에 학대 등 피해를 겪었고, 생애 과정을 통틀어 피해 경험이 없는데도 가정폭력을 저지른 경우는 9.1%에 불과했다.
◆6개월 만에 끝나는 심리치료 서비스 지원
그럼에도 학대 피해아동 사후관리 체계는 미흡한 실정이다. 심리치료 서비스 지원이 6개월이면 끝나 B군의 사례처럼 치료가 더 필요한데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에 따르면 학대피해 아동 치료를 위한 전담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의료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지정된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은 2곳에 불과하다. 이마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한 곳으로 보건복지부 지정 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2019년 3만45건의 아동학대 판정 사례 중 의료지원을 받은 아이는 401명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 2월 대한의사협회와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공동 주최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보건의료시스템,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에서도 지적됐다. 배기수 아주대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아이는 한창 지옥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치료는 끊기게 된다”며 “현재 협력기관도 병의원, 보건소, 정신보건센터, 알코올상담센터 정도로, 피해아동을 도울 협력기관이 부족하다. 최소한 PTSD 특화센터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아동에 대한 사후 치료·관리가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고, 피해아동의 형제자매, 동거 아동까지 관리·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배 교수는 “피해 아동의 평생에 걸친 육체 및 정신 질환을 관련 종사자 간의 융합ㆍ통합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지향’ 소속 김영주 변호사는 지속적인 아동학대 모니터링 및 점검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아동학대 대응체계 과제와 개선방향’ 세미나 보고서에서 “아동학대 사례 관리 시 시설에 입소했다 하더라도 피해 아동이 학대받지 않는지 등 안전 확인 및 대면점검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관부처 및 아동권리보장원은 아동보호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보강해야 하는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추진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모니터링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체계적 부모교육이 근본적 학대 예방책”
“아동들의 꿀밤을 몇 번 때리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게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을 만한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인이나 강도, 절도를 한 것도 아니고. 여론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서 우리가 처벌을 중하게 받으면 그건 억울한 것이다.”
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인천 서구 공립 어린이집 전 원장이 지난 2월 한 보육교사와 통화한 내용이다. 이들은 지난 19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학대로 보는 것은 가혹하다”고 항변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의 생각이 이럴진대 일반 가정은 어떨까.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면서 부모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권위적 가족문화에다 점점 커지는 핵가족화, 물신주의, 양육 부담 등으로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역량, 지식을 미처 갖추지 못한 채 부모가 된 이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상담이 이뤄져야 근본적으로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사건(3만45건)의 가해자 75.6%는 부모였다. 피해 아동을 재학대(3431건)한 행위자 역시 부모가 94.5%를 차지했다. 부모들은 체벌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편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민법상 부모 징계권 폐지(2021년 1월8일) 100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66.7%는 “여전히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응답자의 84%는 체벌이 아동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정부도 부모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중앙정부는 지난해 ‘아동·청소년 학대 방지 대책’ 중 하나로 ‘맞춤형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을 포함한 뒤 지원대상을 중위소득 72%에서 100% 이하로 확대했다. 부모교육 확산·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마련한 지방자치단체는 4월 현재 광주와 전북, 경남, 서울 노원·도봉구, 경기 안산시 등 14개 광역·기초단체에 이른다.
문제는 내실화다. 울산여성가족개발원에 따르면 부모교육은 주로 영·유아기나 아동·청소년기 부모 대상으로만 이뤄지고 예비 부모나 성인기 부모, 맞벌이 부모, 한부모·조손·다문화·미혼모 가정에 대한 부모교육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초·중·고교 단계나 출산·보육수당 지급 시 부모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민자 울산대 교수(아동가정복지학)는 “국가 차원에서 아이라는 선물, 인간다움에 대한 긍정성을 디자인하고 교육해야 하는데 지금은 칸막이식 교육만 하고 있다”며 중고교 가정과목을 활용하거나 혼인신고, 임신·출산·양육수당 지급시 부모교육 의무화 방안을 제안했다.
이보람·송민섭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