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노정태 옮김/부키/2만2000원
“환경 종말론자들이 퍼뜨리는 논의는 부정확할 뿐 아니라 비인간적이다. 인간이 생각 없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는 말은 옳지 않다. 기후변화, 삼림 파괴, 플라스틱 쓰레기, 멸종 등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탐욕과 오만이 초래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발생하는 부작용일 따름이다.”
탄소배출,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는 사실이지만, 위기만을 강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현실적 대안도 과학적 분석도 없는 기후위기론은 공포, 불안을 조장할 뿐이다. 특히 기존 환경위기론이 가진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인류를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보고 적대화하며,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우리가 긍정적이고 인간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환경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역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예를 들어 오늘날 해양 쓰레기로 지탄받는 플라스틱은 사실 바다거북과 코끼리를 멸종 위기로부터 구해냈다. 플라스틱이 개발되기 전 인류는 수천년간 매부리바다거북 껍질로 안경, 빗, 리라, 보석, 각종 상자 등 다양한 사치품을 만들어왔다. 이를 위해 인간은 1844년 이후로만 바다거북 약 900만마리를 잡았다. 상아 역시 사치품과 공예품으로 각광받아 19세기 말 미국과 영국 수요로만 매년 10만마리 가까운 코끼리가 죽어 갔다.
오늘날 환경주의는 때때로 일종의 세속 종교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성 종교 색이 옅은 고학력층을 위한 신흥 종교 말이다. 신도들은 주로 선진국과 일부 개발도상국에 거주하는 상위 중산층이다. 환경주의는 신도들에게 새로운 인생의 목적뿐 아니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영웅과 악당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여기에 과학의 이름이 덧붙여져 지적 권위까지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란 목표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환경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인류의 화두가 될 것이 자명한 이 시대에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우리가 냉철해지길 요구한다. 낭만적인 환경주의자가 아닌 현실적인 환경주의자가 되라는 것이다. 저자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에서 최선을 다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사실과 과학을 올바로 전달하려는 목표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각종 과학 연구 성과와 데이터, 각 분야 과학자와 환경 활동가 및 현지인 인터뷰를 망라했다. 과장과 허구를 가려내고 낙관적 시각과 긍정의 힘을 되찾아야만 지구와 인류 모두에 번영을 가져다주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