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는 요물이다. 올해 초부터 가상화폐가 급등함과 동시에 버블 붕괴 우려는 항상 따라다녔다. 당장 지난 2017년 비트코인을 포함한 모든 가상화폐 버블 붕괴로 고통 받던 투자자들의 비명이 아직 생생하다.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잘못하다간 한 순간에 빈털터리가 될 것을 알면서도 가상화폐에 눈이 간다. 하루에도 수십% 상승을 하며,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수십 배로 뛴 시세표와 차트를 보면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적은 투자금으로 가상화폐에 투자해 수 억원, 수 십억 원을 벌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더 조급해진다.
결국 유혹에 굴복한 기자는 급락장이 오기 직전인 지난달 15일 가상화폐에 뛰어들었다. 선천적으로 리스크를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라, 가상화폐에 투자하기 전에 몇 가지 ‘안전장치’를 세웠다. 돌이켜보면 이 안전장치를 세운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안전장치는 다음과 같았다. 투자금은 100만원. 수십 배 수익을 올려도 부자는 될 수 없지만, 모두 잃어도 ‘쿨’하게 넘길 수 있는 액수였다. 두 번째는 상승장과 하락장에도 투자금을 추가로 넣지 않는 것. 세번째는 -50% 손실이 오면 거래소 앱을 지우는 것이었다. 기자는 이 세가지 규칙과 100만원을 들고 가상화폐 거래소 문을 열었다.
◆어떤 가상화폐를 살까
가상화폐에 뛰어든 불나방 같은 청춘들은 부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이들은 정작 가상화폐 시가총액 1위인 비트코인에 ‘올인’ 하지 않는다. 이미 오를 대로 올라버린 비트코인은 매력이 떨어진다. 하루에 비트코인이 10% 오를 때, 어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화폐)은 100% 상승할 때가 비일비재했다. 설령 비트코인에만 투자하려고 거래소 앱을 켰다가도, 다른 가상화폐의 ‘빨간’ 상승률을 보면 눈 뒤집힌다. 가상화폐의 묘미다.
기자도 일단 비트코인은 제외하기로 했다. 어차피 100만원이다. ‘100만원 가지고 위험을 피했다가 언제 부자될래?’라는 환청 비슷한 게 들린다. 기자가 ‘코린이’(코인+ 어린이 합성어로 가상화폐 초보 투자자라는 뜻)가 돼 가장 처음 산 기념적인 가상화폐는 ‘넴(XEM)’이었다. 구매단가는 580원.
넴을 선택한 이유 따윈 없었다. 그저 시세 차트가 ‘예뻐보였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는 기업도, 재무제표도, 펀더멘털도 없다. 평소 재무제표 분석하는 게 취미인 기자한테는 가상화폐란 정체불명의 불확실한 투자 상품이었다.
인터넷 상에 떠도는 각 가상화폐의 호재성 정보는 출처와 팩트조차 불분명했기에 이를 믿을 수는 없었다. 오로지 보이는 건 최근 반년간 시세 차트 뿐이었다. 넴의 경우 기자가 선택하기 전까지 하락장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 기간이 끝나고 조만간 반등할 것처럼 보였다. 기자는 반등장을 보고 투자금 100만원을 모두 ‘베팅’했다.
가상화폐를 샀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조용히 기도하거나, 카카오톡 채팅방 같은 곳에서 다 같이 모여 마법의 주문인 “가즈아!”를 외칠 뿐이다.
◆종목 변경과 ‘반토막’
기자는 가상화폐 넴이 반등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하락세를 이어갔다. 넴의 시세는 기자가 처음 가상화폐를 구입한 날에서 며칠 뒤인 19일 10.50% 하락했다. 3일 만에 투자금이 100만원에서 90만원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 기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띄운 ‘도지코인’은 하루에도 날개 돋힌 듯 몇십% 상승하고 있었고, 몇몇 알트코인도 하루에 적게는 10%, 많게는 50% 상승하고 있었다.
다른 알트코인의 상승률을 보니 아무래도 가상화폐를 잘못 고른 듯 싶었다. 또 생각 없이 너무나 성급하게 넴을 선택한 듯싶었다. 그러던 중 다른 알트코인인 리플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소송전이 리플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약 오는 6∼8월에 리플이 승소라도 한다면 시세는 몇 배 급등할 것만 같았다.
결국 기자는 넴을 전량매도하고 비트코인과 리플을 나눠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미 오를대로 올라버린 비트코인과 리플로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욕심에 선택한 것은 비트코인과 리플 시세를 3배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이다.
국내에서 가상화폐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금융상품은 없다. 하지만 가상화폐 거래소 별로 ETF와 유사한 주요 가상화폐를 추종하는 가상화폐가 존재한다. 오를 때는 3배씩 오르지만, 하락할 때도 3배씩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상품이다.
‘마진콜’(선물계약 기간 중 가격 변화에 따른 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은 없지만, 추종하는 가상화폐 시세에 비례해 다시 가격이 매겨지는 구조면서 짧은 시간 등락할수록 장기적으론 하락하는 구조다. 가령 비트코인이 20% 하락하면, 해당 레버리지 상품은 -60%를 기록한다. 반대로 비트코인이 하락 전 시세에 도달하려면 약 25%가 올라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레버리지 상품은 60%만 상승하게 된다.
기왕 투자 하는 거 큰 리스크를 감내하자는 마음에 남은 투자금 90만원을 5대 4로 나눠 각각 비트코인과 리플 3배 레버리지 상품을 구매했다. 그리고 다음날 가상화폐는 급락했다.
지난달 23일 한 때 비트코인이 8000만원에서 5400만원대까지 하락하고, 리플 역시 2000원에서 1045원까지 하락하면서, 시세의 3배를 추종했던 기자의 투자는 말 그대로 ‘초토화’ 됐다. 당시 기자의 가상화폐 수익률은 약 -70%. 투자금은 100만원에서 27만원으로 줄었다.
이쯤 되면 정신이 아찔하고 등골에 식은땀도 맺힌다. 고작 투자금이 100만원인데도 말이다. 만약 투자금이 1000만원 또는 1억원이었다면 불면증이 생겼거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렸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투자하기 전 규칙대로 가상화폐 거래소 앱을 지웠다. 100만원은 인생 수업료 셈 치자. 최근 비트코인이 소폭 반등하면서 손실율은 -70%에서 약 -40%로 줄긴 했지만, 여전히 ‘반토막’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앱을 지우니 마음이 편해진다. 올해 초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해준 말이 떠오른다. 김 센터장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와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돈으로 투자하는 것이 기본이다”며 “리스크와 시간을 버틸 수 없는 큰돈으로 투자를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혹시 몇 년 뒤 기자가 가상화폐에 넣은 100만원이 1000만원이 될지도 모르지만, 당분간 잊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